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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저항한 침묵의 언어.’ 이우환을 비롯한 한국 단색화 계열 예술가들의 입장을 집약한 말이다. ‘단색화는 현실 외면이 아닌 저항의 태도’라는 이우환의 말은 2014년 가을 한국미술계를 뒤흔들었다. 미술계에서는 유신에 침묵으로 저항한 게 아니라 부역한 것이라는 반론이 일었다. 실제 유신에 저항했던 민주화운동가, 정치인, 예술가 등의 저항이 침묵의 언어에 가려질 판이기 때문이었다. 독재의 힘이 직간접적으로 직조한 침묵의 예술, 단색화는 당대는 물론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술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단색화 계열 예술가들과 일부 평론가들이 주장한 ‘침묵의 저항’에 공감하는 미술인들은 많지 않다. 단색화는 예술 창작 방법이나 태도의 문제이지, 시대정신에 준거한 대사회적 가치지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위작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6월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경찰이 위조품이라고 말한 모든 작품이 자신의 작품이 맞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지금 이 ‘침묵의 예술’이 세간의 구설에 휩싸여 있다. 한국 단색화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이우환의 작품 13점이 위작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이어온 논란은 ‘나의 작품에 위작은 없다’는 이우환의 언급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작품에 나타난 호흡과 리듬은 지문과 같은 것이어서 베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는 무조건 작가 의견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중들은 ‘작가가 아니라는데’ 왜 진위 논란이 정리되지 않느냐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다수의 미술인들은 위작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작가의 판단 오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모노하의 창작과 비평을 주도한 이우환의 예술이 한국과 관계 맺으며 모노크롬페인팅으로 변형재생산된 것이 한국의 단색화다. 대중들은 이우환이 어떤 미술사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단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 없이 연이은 스캔들을 지켜보며.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는 경찰과 작가의 발언에 집중하고 있다. 작품의 의미구조는 안중에 없고 진위 공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예술작품 본연의 사용가치인 의미론보다는 작품이 거래의 대상으로 떠도는 교환가치인 상품론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해 위기를 맞은 예술가에게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판단을 근거로 주장할 권리가 있다. 이우환이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발언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침묵의 저항’을 언급하고 ‘위작 불가’를 선언했다. 그의 주장은 그의 권리다. 전자는 작품의 비평적 가치를 확장하려는 것이고, 후자는 작품의 상품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우환은 자신의 권리를 선택했다. 미술계나 여론이 기대하는 집단적 윤리의 잣대를 그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다. 그의 주관적 선택과 판단에 여론은 과도하게 무게를 싣고 있다. 그가 논란의 핵심 당사자이긴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이우환 개인에게 과도하게 쏟아지는 윤리적 비판의 이면에는 대한민국 사회와 미술계의 윤리 문제를 감추려는 집단심리가 숨어 있다. 개인 윤리에 천착해 집단 윤리를 간과하는 한국 사회의 못된 버릇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만약 문제의 작품들이 위작으로 판명난다고 해도, 이우환은 위작을 제작한 당사자가 아니다. 그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지 가해자나 피의자가 아니다. 그는 위작으로 의심받는 작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뿐이다.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경찰 조사를 거치며 언론에 노출되는 이우환의 주장은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작가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라도 작품 감정에 대해 완벽한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우환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을 줄이고, 차분하게 집단지성의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천경자에 이어 이우환 사건을 맞아 위기에 몰린 미술계는 문화부 관료의 미술계 개혁 드라이브나 공권력의 사법주의를 넘어서는 전문가 집단의 실력과 윤리성을 기르는 데 관심을 집중할 일이다. 공권력과 예술가의 대결구도를 지켜보는 집단관음증 수준을 넘어서 이번 논란이 함의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성찰해야 한다. 전속작가제도를 운영해온 것처럼 보였던 화랑, 진위 문제에 취약한 유통구조, 위작을 생산해내는 범죄적 행위,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작품 감정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의 가치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침묵의 비평 등 산적한 문제들을 뒤로한 채, 이우환 개인에게 모든 문제를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개인의 윤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집단지성에 근거한 사회적 윤리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예술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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