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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면 밥상에서 깨지락거리는 자식들한테 한국전쟁 때 배곯은 얘기를 하던 어른들의 불행한 과거는 먼 옛날이 아니다. 남들은 다 피란 가는데 우린 거동 힘든 할아버지 때문에 죽게 생겼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는 몸피가 불어 어른이 되었어도 어머니가 볶고 빻아서 피란 짐에 넣은 미숫가루 냄새를 톺아낼 만큼 가까운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는 가깝고, 오늘은 무거운 세대들에게 기억은 행여 내일도 같은 해가 뜰까 봐 두려운 미래의 불안이었다. 소멸되지 않는 기억의 무게를 평생 짊어진 이들의 자식들은 무조건 앞을 향해서 묵묵히 달려야 했다.

그는 엄청난 나뭇짐을 지게에 짊어지고도 비탈진 길을 서붓서붓 오르던 아버지 얘기를 했다. 그의 고향 앞바다는 본디 옛날부터 봄이면 은빛 조기가 바다를 뒤덮었다지만, 그의 아버지는 배를 타지 않고 땅을 갈았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 힘이 장사였어요. 저도 아버지 따라 땔나무를 하러 다녔는데, 고등학생 때도 아버지만큼 지게질을 하지 못했어요.”

그의 아버지는 소처럼 일했고, 자식들도 학교만 끝나면 논으로 밭으로 등 떠밀려 나가야 했다. 때때로 일손이 달리면 학교도 걸렀다고 했다. 동네에서는 제법 잘 사는 집이었는데도 그랬다. 그의 형제들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부지런히 고향을 떠났고, 그도 대학 때부터 객지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제 손으로 등록금을 벌려고 공사판에도 나갔고, 공장도 다니고, 장사도 했다. 농사만 아니면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그의 청춘은 내내 고단했지만, 그래도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아버지가 겪은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산업용 천막 공장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다는 그는 자식들한테 자신이 고생한 얘기를 다해준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말한다. “나는 안 해본 일이 없는데, 세상 참 좋아졌지요. 그리고 요새 최저임금 봐요.”

그는 쌀 한 톨도 고마워하라는 그의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세상이 이쯤이면 되었으니 묵묵히 일이나 하라는. 일하는 청년 73%가 필수생활비도 부족하다는데 정말 이쯤이면 되는 것일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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