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계법 중에서 이상과 현실의 충돌, 조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게 정치자금법이다.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금권정치를 청산해 깨끗한 정치 풍토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핵심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일부 현실과 괴리되어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이 갖은 편법과 불법을 양산하는 원인을 제공해온 것도 사실이다. 의도가 뻔한 출판기념회가 판을 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쪼개기’ 후원이 성행하는 것이 실례다. 제한이 많기는 하나 후원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역 의원과는 달리 소수 정당이나 신인 정치인들, 원외 인사들에게는 제대로 정치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제약이 많다. 당초 취지와 달리 정치자금법이 ‘돈 없고 인맥 없는’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온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돈 없는 사람은 정치를 못한다는 ‘무전무치(無錢無治)’라는 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25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인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가 적혀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생전에 정치자금법의 완화에 반대해온 고 노회찬 의원조차도 ‘지키기 어려웠던’ 정치자금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돈 안 드는 정치’의 당위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정치를 하려면 돈이 든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정치자금 모금 상한액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현역 의원이 아닌 원외 정치인, 청년·여성 등 예비출마자들도 정치자금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의 유입, 운용, 사용 모두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정치자금의 유입과 사용에 대해서는 규제를 풀고 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치자금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처럼 정치후원을 폭넓게 인정하되 그 내용(후원자, 액수, 사용처)을 상시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정경유착의 통로가 될 우려가 있는 기업은 배제하더라도, 단체의 후원금은 허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아울러 현역과 비현역, 정치신인이 차별 없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중앙선관위의 폐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의 텃세에 밀려난, 국고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에 우선 배분하는 형평성 잃은 제도 역시 고쳐야 한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사건의 충격 속에서 ‘이상’에만 치우친 탓에 편법적이고 왜곡된 정치자금 확보 관행을 조장하고, 한편으로 억울한 희생을 낳아온 정치자금법을 이제는 손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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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