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와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대를 지나,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경고가 끝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어나서 배를 엎어버린 촛불의 물결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소망을 담은 배를 새로 띄운 지 다시 1년, 교수신문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사자성어를 선택하였다. 비판이나 경고와는 달리, 우려 속에 여전한 기대가 담긴 말이다.

무거운 임무를 맡은 사람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누가 맡아도 호전시키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때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말의 원출전인 <논어>는 그 요건으로 홍의(弘毅), 즉 넓고 굳셈을 들었다. 넓지 않으면 무거운 짐을 질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멀리까지 견딜 수 없다. 넓기만 하고 굳세지 않으면 원칙과 기준이 무너져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정립할 수 없으며, 굳세기만 하고 넓지 않으면 독선에 빠져서 사방에 적만 만들 뿐 안정적인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넓음과 굳셈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임중도원’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한 말이다. 조선 후기 문인 윤기(1741~1826)는 넓고 굳세게 할 방법 역시 증자의 말에서 찾았다. 능력 있다고 해서 부족한 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다수의 지지를 받더라도 소수자를 존중하며, 있어도 없는 듯 꽉 차도 텅 빈 듯해야 넓어질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협 없이 원칙을 지키면서 주어진 작은 임무 하나하나를 완수하는 것이 굳세지는 길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협소한 독선을 비판하고, 일각에서는 개혁 의지의 희석을 우려한다. 관대하게 포용해야 할 대상과 입장이 무엇이고 저버리지 말아야 할 약속과 바람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임중도원의 임(任)이 인(仁)을 이루어가는 일이라는 증자의 말을 상기한다면, 이 시대에 가장 고통스러운 이들이 누구인지 살피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낮은 곳에 함께하고자 한 초심, 거기서 약간만 벗어나도 종착지는 천양지차로 벌어지고 말 것이다. 어디로 향하는 도(道)인지 성찰하지 않은 채 그저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달려가는 데에만 급급하면, 1년 뒤에 주어질 사자성어에서는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져버릴 수 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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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