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하다 보면 젊은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사회생활하면서 심하게 개념 없고 무례한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힘든 질문이다. 나 역시 대처한다기보다는 견뎌내고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아서다. 해가 바뀌었지만 세상은 어김없이 소란스럽고, 사람들은 누군가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호소한다. 서점 매대는 무례한 자들로 인해 허약해진 자존감을 위로하는 책들로 가득한 지 오래다. 너도나도 남 탓만 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세상 같기도 하지만, 그 아픔들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 선의를 왜곡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공자님, 예수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일상의 고통을 직면하고 정신승리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니 몇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다소 순진하던 시절,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을 몹시 힘들게 만들었던 몇몇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좋지 않은 모습으로 떠나가는 것을 반복해서 보게 되어서다. ‘왜 날 괴롭힌 사람들은 다 저렇게 떠나는 걸까. 화분도 미운 말을 자주 하면 시든다던데, 혹시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끼친 걸까. 초능력인가’ 함께할 땐 힘들었어도 누군가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편치 않았기에 왠지 미안했다. 지나고 보니 그 미스터리한 현상들은 ‘순리’라는 표현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실수나 갈등도 있을 수 있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행동을 자주 하게 될 때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내게 과하게 힘든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과하게 힘든 사람인 경우가 많고, 사람들은 불의 앞에 오래 인내하지만 한없이 참지는 않는다. 다소 느리지만 시간은 의외로 성실하고 공평한 해결사임을 믿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두 번째는 다다익선의 법칙이다. 힘들게만 느껴지던 예전 상사나 동료, 혹은 옛 애인이 가진 미덕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나서야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지금 겪는 상사가 최악이고, 요즘 만나는 관계의 고통이 최대치일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두 사람을 비교할 때와 세 사람을 비교할 때 다르고, 다수를 비교할 때 또 다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서로의 다름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뒤늦은 고마움에 오래전 연락처를 뒤지기도 한다. 깊이 없고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면, 다양한 사람을 경험할수록 판단도 성숙해진다는 것을 배운다.

세 번째는 유명한 진상 총량의 법칙이다.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한 기억이 훨씬 많은 운 좋은 직장생활을 했지만, 한때 위아래로 온통 힘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고 느낀 적이 있다. 상사도 직원들도 모두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이리 일이 안 풀리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당시엔 내가 진상 관리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정수리를 친다. 성실한 직장인일수록 한번쯤은 겪는 번아웃(Burnout) 증세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시기였다. 어쩌다 한 명이 아니라 온통 주위가 적으로 느껴진다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우연이 반복되는 데에는 필연적 이유들이 있을 수 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일 확률이 적지 않다.  

네 번째가 중요하다. 100세 노인에게 “미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인생지혜를 물으니, “냅두니까 다 죽던데”라는 불멸의 진리를 하사하셨다지. 장수비결이 단번에 이해된다.  

인생고의 대부분은 일이 아니라 인간관계다. 굽이굽이 인생길에서 복병처럼 기습하는 고통 유발자들에게 초연할 수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서럽고 분한 눈물과 함께 아침을 맞는 분들. 누군가의 면상을 향해 호쾌하게 사표를 날리는 상상을 하며, 분노의 칫솔질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들, 모두 올 한 해 정신승리하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박선화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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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