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때였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친구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자전거가 내 뒤쪽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뒤통수부터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다. 이어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엄마, 아빠, 친구에 대한 원망,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조치, 부족한 운동신경에 대한 한탄 등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제법 극단적인 상상을 포함한 온갖 생각이 들었던 것치고는 민망하게도, 내 뒤통수는 안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자전거 뒷바퀴 위에 앉아 있었다. 별로 다친 곳도 없어서 툴툴 털고 일어나 수업을 들으러 갔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 신기한 경험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왜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30초는 그토록 길고, 재미있게 놀 때면 3시간도 순식간일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처럼 위험한 순간에는 왜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

위험한 순간에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데이비드 이글먼이라는 연구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위기 상황에서는 주변 환경을 평소보다 빠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느껴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이 가설을 실험하기 위해 손목에 찰 수 있는 특수한 전자스크린을 만들었다. 스크린에는 빨간 바탕에 까만 숫자가 보이는 화면과, 같은 숫자가 까만 바탕에서 빨갛게 보이는 화면이 번갈아 보였다. 두 화면이 번갈아 보이는 간격이 충분히 길면 화면에 어떤 숫자가 보이는지 읽을 수 있지만, 화면이 전환되는 속도가 빠르면 읽을 수 없다. 알록달록한 색 팽이를 돌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글먼 박사는 사람들이 숫자를 간신히 읽을 수 있는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게 화면이 전환되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이 번지점프를 하는 동안 손목에 찬 전자스크린에 어떤 숫자가 보이는지 읽어보라고 했다. 만일 위기 상황에서 외부 상황을 인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 참가자들은 스크린 속의 숫자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숫자를 읽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번지점프를 보면서 추정한 시간에 비해서, 본인이 낙하하는 시간을 35% 정도 더 길게 추정했음에도 (본인이 떨어지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꼈음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실험참가자들이 번지점프를 하면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뾰족이 솟아오른 새싹처럼 작은 사물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보다보면 새싹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공간이 확대되어 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여러 사물을 두루 훑어볼 때면 넓은 공간이 좁아지면서 시야가 넓어진다. 때로는 산 아래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기억도 시각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기억은 내가 의식적으로 인식했던 감정과 생각과 외부 자극과 경험들을 시간이라는 축에 펼쳐낸다. 번지점프를 할 때처럼 위험한 상황에서는, 위기를 돌파할 방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뇌가 평소보다 전반적으로 각성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 상황에 대한 자극뿐만 아니라, ‘뒤통수부터 떨어지면 어떡하지’를 비롯한 갖가지 생각과, ‘내가 이 실험을 왜 하겠다고 했던가’같은 후회 등 온갖 감정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인식된다. 그러면 새싹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볼 때 작은 공간이 확대되는 것처럼, 번지점프를 하는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지게 된다.

이글먼 박사에 따르면,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도 위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는 세상의 많은 것이 새롭고, 그 많은 것들에 호기심, 흥미, 두려움 등 온갖 감정이 생긴다. 이처럼 세상의 여러 가지가 생생하게 인식되는 상황은 정도는 덜 할지언정 번지점프를 할 때와 유사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갈수록 많은 일에 익숙해진다. 작은 새싹 대신에 여러 가지를 조망할 수 있게 되고, 그런 만큼 시간도 빠르게 흐르는 것이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벗어나야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때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놀 때는 시간이 왜 빨리 흐르는가?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만큼이나 억울한 게 또 있다. 재미있게 놀 때면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예기치 못하게 즐거운 일이 생길 때면 신경조절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보상의 예측과 학습, 동기 부여에 깊이 관여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 내부의 시계와도 관련된다. 내부 시계가 실제의 시간보다 빠르게 돌아가면 (예: 마음은 벌써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내부 시계가 실제 시간보다 느리게 돌아가면 (예: 즐겁게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음에 놀라게 될 것이다.

생쥐를 사용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생쥐가 기다리는 동안 도파민 신경세포의 활동이 높으면 내부 시계가 느려지고, 도파민 신경세포의 활동이 낮으면 내부 시계가 빨라졌다고 한다. 이 결과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활동이 높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껴질 것임을 암시한다.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지는 즐거운 순간이라면 도파민 신경세포의 활동이 증가할 테니, 반나절이 순식간에 흘렀다며 놀라는 것쯤이야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싫지만 아마도 즐거운 시간은 갖고 싶을 당신에게,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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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