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를 밀어내고 들어선 신도시에 살던 때, 가장 먼저 들어선 카페는 ‘파리바게뜨’였다. 동네에서 제일 일찍 여는 상점이기도 했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이 손에 쥐여주던 빵도 파리바게뜨 빵이었으니 내게 그럭저럭 좋은 기억으로 남은 빵집이다. 

지방의 군 단위 작은 고장에도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리바게뜨를 보면 늘 의아했던 것이 저 많은 빵과 케이크는 대체 어떻게 갖추는지였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양산빵도 있지만 분명 매장에서 직접 굽는 빵도 파는데 과연 누가 빵을 굽는 것일까.

훗날에야 전국 파리바게뜨에서 똑같은 빵을 팔 수 있는 이유는 매장 한쪽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빵을 구워내는 ‘제빵기사’가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외식 프랜차이즈의 속성은 음식을 직접 만드는 원천 기술이 없어도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3000개가 넘는 파리바게뜨의 점주들이 빵을 직접 만드는 게 아니다. 본사에 용역비를 내고 파견된 제빵사들이 매뉴얼에 따라 빵을 만드는 체제다. 제빵사들은 파리바게뜨 유니폼을 입고 빵을 만들지만 소속은 파리바게뜨 본사가 아니다. 오래도록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의 소속은 인력을 파견하는 도급 업체였다. 하지만 이 제빵사들을 좌지우지하는 건 파리바게뜨 본사였다. 케이크를 꽉 채우란 지시가 내려오면 수당도 못 받고 일찍 출근했고, 신제품을 예쁘게 진열하란 지시도 본사에서 내렸다. 신제품을 점주들에게 많이 팔라는 영업지시도 본사에서 받아왔다.

가맹점주들이 본사의 눈치를 보는 곳이 프랜차이즈의 속성이긴 하지만 본사 입장에서 가장 큰 고객은 또 가맹점주이기도 하다. 프랜차이즈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제품들을 떠안는 곳도 가맹점들이고 그래서 가맹점 늘리기에 혈안이 되곤 한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본사와 가맹점주들 사이에 끼어 이중 갑질을 당한 사람들은 제빵사들이다. 아침 일찍 여는 제과점 특성상 새벽에 출근해서 매장을 꽉 채울 만큼의 빵과 케이크를 만든다. 상상 이상으로 센 노동 강도와 저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제빵사들도 여전히 많다. 제빵사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점주들도 많지만 갈등을 일으키는 점주들 매장은 험지로 분류될 정도다.

빵이 못생기게 나왔다며 제빵사들에게 빵을 다시 사가라는 지시는 제빵사들 대부분 당하는 일이고, 재료를 많이 썼다고 욕을 먹는 이들도 제빵사였다. 소속 회사에 매장에서 당한 부당한 조치에 대해 보고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파리바게뜨 본사 눈치를 봐야 하는 하청업체는 제빵사들에게 참으라고만 했다. 

그렇게 불법 파견된 자신들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전국 8도에 흩어진 제빵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사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노동부의 지시에도 본사는 버텼고, 겨우 ‘PB파트너스’라는 계열사에 제빵사들은 고용되었다. 여러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한다는 약속과 임금인상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측의 입장에 가깝게 움직이는 복수노조가 설립되어 노노갈등의 양상으로 몰아가며 파리바게뜨는 여전히 방관하는 중이다. 롤케이크를 사들고 고향 부모님께 찾아가는 설날에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은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파리의 아침’을 열던 제빵사들의 손에는 크림주머니가 아니라 팻말이 들려지고 위생모자 대신 머리띠가 둘러져 있다. 오늘 우리가 먹은 파리바게뜨의 빵은 눈물 젖은 빵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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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