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을 받으면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답변하라.” 군 복무할 때 상급 부대의 검열을 앞두고 지휘관이 지시한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하기 힘든 모순형용으로 느껴져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연 겸손하면서 당당한 태도가, 그런 삶이 가능할까.

<사기열전>에서 서문 격인 ‘백이열전’ 바로 다음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관중이다. 그런데 제목이 ‘관중열전’이 아니라 ‘관안열전’이다. 안영이라는 인물을 합하여 열전을 구성한 것이다. 사마천은 관중 이야기 뒤에 안영에 대한 짤막한 일화 두어 개를 실어 두고는 논평에서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겠다”라며 흠모의 정을 드러내었다. 열전의 인물평 가운데 몇 안되는 극찬이다. 아랫사람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돌이킬 줄 알았으며, 평소에는 자신을 낮추고 검소하게 살았지만 직언을 할 때는 왕의 얼굴빛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겸손하면서 당당한 인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영의 마부가 어느 날 부인에게 느닷없이 이혼을 통보받았다. 영문을 모르는 마부에게 부인이 그 이유를 말했다. “안영은 왜소한 체구로 재상의 명성을 날리면서도 늘 겸허한 모습인데, 당신은 훤칠한 외모로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 너무도 의기양양하더군요.” 안영과 마부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안영의 관심은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돌아볼수록 부족하고 부끄러우니 겸손하다. 품은 뜻이 크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니 당당하다. 반면 마부가 자랑스러워한 것은 화려한 재상의 마차를 몬다는 외적 요건 때문이었다. 직함이나 외형의 우월함에서 나오는 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거만함이다. 내면을 채운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잃을 수 있으니, 겸손함이 아니라 비굴함이 따른다.

이른바 ‘갑질’이 사회의 화두가 되더니,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시행을 몇 달 앞두고 있다. 직위로 인한 횡포를 경험한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오늘, 갑질은 일부 재벌가의 일탈적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호 간에 자행되고 있다. 거만함과 비굴함의 사이를 불안하게 오갈 것이 아니라, 겸손하면서 당당한 삶의 이상을 다시 떠올릴 일이다. 순간순간 나의 만족과 실의가 어디에서 오는지 곰곰이 성찰해 보면서.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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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