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을 해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소리. 시골에 산다고 다짜고짜 노인 취급을 한다. 아버니임~으로부터 시작되는 코맹맹이 소리.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면 재차 또 걸려오곤 한다. 짜증이 욱 올라온다. 태양광 소리만 들어도 이젠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탈곡기를 사라는 전화도 온다. 마을 전화부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전화를 다 하나 싶다. 손전화기로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도 두어 번 받아보았다. 귀하의 은행정보가 털렸다고 하길래 은행에 저축한 돈이 없는데 괜찮다고 했더니 딱 끊는다. 좀 더 전화를 해도 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 언젠가는 대출을 해준대서 이미 콩팥 장기까지 팔았다고 했더니 딸칵 끊더라. 

대학생인 아들이랑 통화를 하다보면 ‘이 녀석이 요새 돈이 없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술값이 없든지 책값이 없든지 아니면 데이트 비용이 없든지 셋 중 하나일 테다. 사내아이는 보이스. 낚시는 피싱. 대부분의 부모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산다. 해준 것 없는 아비에게 마음을 내는 걸 보면 나로선 감사한 일. 적은 돈이지만 잘 받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마음에 저장해둔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낙들 둘이서 자식 걱정을 했다. 한 아낙 왈 “대학교 댕기는 아들이 만날 돈만 부쳐달라는데, 도대체 무슨 학생이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학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푸념을 늘어놓자, 듣고 있던 다른 아낙 왈. “차라리 그렇다면 속이나 편하겠네요. 우리 딸은 돈을 달란 소리를 전혀 안 해요.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 옷 사고 가방 사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빼앗기는(?) 편이 낫다 싶기도. 

몽글몽글 구름이 피어나더니 서산을 넘는다. 어떤 날은 전화가 하도 많이 걸려와 소동에 가까운 날이 있고, 어떤 날은 공치는 심심한 날도 있다. 번호부를 뒤지면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 인연이 다한 사람. 아쉽지만 가벼워지고 싶어 ‘삭제’를 누른다. 오래전 죽은 사람이지만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 둔 이름도 있다. 그리운 노란 리본의 이름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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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