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럽던 목련이 이파리를 떨구고 샛노란 개나리가 초록으로 덮이는가 싶더니만, 벚나무와 복숭아나무가 희고 붉은 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에 이어 철쭉이 언덕을 뒤덮는다. 풀숲 사이로 고개 내민 제비꽃, 할미꽃을 살피며 걷는 사이, 상큼한 라일락 향이 코끝을 스친다. “꽃길만 걷자”는 말이 온몸으로 실감나는 계절이다. 인생이 늘 꽃길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느끼며 사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복되고 기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힘겹고 불만스러운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초연(超然)’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다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도심의 안락한 환경을 즐기던 소식이 어느 날 궁핍하고 불편한 시골 수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고생이 많겠다며 위로하기 급급한데, 그 동생 소철은 형이 즐겨 오르는 누대에 ‘초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느 곳에 가든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형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소식은 어떤 수련을 닦았기에 초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시골 수령 생활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연이은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해 백성은 굶주리고 도적이 들끓었다. 1년 넘게 동분서주하며 구휼과 치안에 힘쓴 끝에야 다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든 어느 구석인가는 볼만한 점이 있기 마련이며, 그렇다면 나름대로 즐길 만하기도 하다는 게 소식의 생각이었다. 공기 좋은 곳에선 산나물에 된장도 별미이고, 멋진 이들과 함께라면 싸구려 술로도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이게 소식이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소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앙을 구하고 복은 버리는 길을 간다고 했다. 왜 그럴까. 대상에 갇혀 지내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대상이라 해도 그 안에 갇혀서 바라보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즐거움과 근심,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오로지 자신을 압도하는 대상에 달려 있다면, 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진 게임이다. 우리가 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꽃이라는 대상 바깥에서 바라보기에 가능하다. 대상에 갇히지 않기를 경계할 일이다. 초연한 자가 꽃길을 걷는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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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