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통계와 데이터 프로그래밍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친 지 5학기째다. 매 학기 지자체나 정부부처 공공데이터를 통해 멋진 그래프를 그리고 분석도 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지만, 많은 문과 학생들은 통계학의 간단한 수식 몇 개만 띄워도 질겁하기 일쑤다. 그래도 매 학기 몇몇은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혼자 씨름해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이다. 높은 수준의 분석능력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알고리즘과 높은 수준의 통계학인데, 그것까지 사회학과 수업에서 다루긴 어렵다. 미적분학, 선형대수, 확률통계론, 이산수학 같은 공대의 수학 수업을 학생들에게 추천했다. 학과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임에도 공대 수업이어서 겁이 났는지 성적은 기대하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학과 학생들은 공대와 수학교육과 등으로 원정을 나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대의 수학 수업을 듣는 사회학과 학생들이 수업의 ‘에이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이 지방대 ‘수학 포기자’ 문과 학생들에게서도 효과를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공대로 간 사회학과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을 한 건 맞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공대에도 수학 포기자가 많고,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거였다. “어렵다”는 생각으로 공학 기초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충만한 문과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의지만으로 수학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수들도 지방대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갖고 있는 수학에 대한 ‘울렁증’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쉬운 것부터 시작해 소박한 성취를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문과 친구들도 따라갈 수 있었다. 확률통계론 수업은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 과목 복습부터 시작하고, 선형대수나 미적분학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것들은 대학의 기초 수학과목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마쳐야 할 ‘준비과정’과 다름이 없었다.

지방대 공대 교수와 학생들의 고충이 이해가 갔다. ‘FM’대로 수준 높게 가르쳐서는 학생들의 성취가 따라오지 못하니, 정말 쉬운 수준부터 끌고 갈 수밖에 없는 교수.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흥미를 많이 느끼지 못한 이과 학생이었으나 대학에는 가야 한다는 말에 억지춘향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 최소한 1년, 공학 공부의 기초를 만드는 ‘프렙 스쿨’(대학 예비과정)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래야만 4년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프렙 스쿨을 지방대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공부가 어렵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생들이 늘어 골머리를 앓는데, 1년 더 공부시키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방대 공대생들의 진로가 우려된다. 언젠가 만난 대입 컨설턴트는 “이공계는 전공이 중요하고, 문과는 학교가 더 중요하다”고 취업 문제에 대해 정리했다. 문과 학생들을 기업에서 뽑을 때 어떤 전공의 어떤 과목을 이수했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공대 출신들은 구직시장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전공에 따라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전공과목이 직무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기업들이 반도체학과처럼 계약 학과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로 특화된 이론 및 실습 수업을 들었을 경우 좀 더 빠르게 실무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이수했을 때 서로 같은 수준의 역량을 보증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제조 대기업들은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수한 공대생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공장마저 우수한 공대생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지으려고 한다. 지방정부들은 대기업 사업장을 입지시키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처럼 말한다. 그사이 사라지는 것은 평범한 다수를 형성하는 지방대 공대생들과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대기업 계약 학과나 특성화 과정을 지방대가 많이 유치하여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서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방법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동등한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촘촘한 제도와 교육과정의 설계 없이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산업·교육·노동정책은 평범한 공고생들의 교육과 일에 대해 고민을 했고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했다. 최근 20년간은 우수한 인재에 대한 고민만이 넘쳐났던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나 제조업의 진화 같은 전환을 위해 정책이 좀 더 집중할 대상은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커리어를 갱신하려는 우수한 엔지니어보다는 지방의 제조업 현장을 지키며 꿋꿋이 일하고 있는 다수의 엔지니어들이 아닌가 싶다. 앞서서 끌고 가는 사람 한 명이 있으려면 든든하게 뒤를 받치는 수백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대학의 공대 학부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끔, 그리고 현업의 엔지니어들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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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