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창의적 교육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이야기하는 사람들. 난 당신들 보면 웃겨. 아무도 교사 얘기를 안 하잖아. 창의적 교육을 하려면, 교사가 창의적일 수 있어야겠지? 그런데 1반부터 끝반까지 교과서 똑같아야 해. 1반부터 끝반까지 진도 똑같아야 해. 1반부터 끝반까지 시험문항 똑같아야 해. 그래 놓고 창의적 교육을 하래. 좀 웃긴 거 아냐? 똑같은 식재료, 똑같은 레시피, 똑같은 조리도구 나눠주고는, 창의적 요리를 하라는 거잖아. 그 와중에 학교당 1년에 공문 1만건씩 쏟아지고. 

이런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온 혁신학교 선생님들에게, 일동 박수. 하지만 계속해서 고군분투하라는 교육감들에게, 일동 야유. 역풍을 일으키는 제도들은 그대로 둔 채, 교사들의 피땀으로 순풍을 일으키라네. 이거 뭐 시시포스의 노동이야? 제일 웃기는 구호가 ‘혁신학교 일반화’. 혁신학교는 공모사업인데, 이걸 어떻게 모든 학교가 하지? 슬슬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대놓고 거부하는데, 이제 혁신학교 10년 돌아봐야겠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회를 지탱하는 두 축이 ‘문화’와 ‘제도’라면, 혁신학교는 ‘문화’를 바꾼 셈이잖아. 이제 핀란드의 ‘제도’를 한번 들여다보자. 어, 그래 핀란드. 경쟁 없어도 교육이 잘나간다는, 그저 이런 이미지로 소비되어 버린 나라. 

우리는 높으신 분들께서 교육과정 성취기준 수백개 나열해서 내려보내잖아. 헐! 핀란드는 교육과정 무지 단순해. 그저 몇 학년 때 1차 방정식 가르치라는 식이야. 어떻게 가르칠지는 교사가 알아서 하라는 거야. 대충 요리 이름만 지정해 놓고, 식재료하고 레시피하고 조리도구는 교사에게 맡기는 거지.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교과서를 쓰게 되어 있잖아. 헐! 핀란드는 교사가 교과서를 집필할 수도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6개국에서 한다는 교과서 자유발행제. 레시피를 교사가 만드니까, 당연히 요리책을 교사가 쓸 수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교과서로 뭘 선택할지 아니면 직접 집필할지 교사가 정하는 거지. 

우리는 신학년 시작하기 2~3주 전에야 교사가 담당할 과목과 학년을 알게 되잖아. 그나마 1주일 전이던 걸 요새 겨우 좀 앞당겼잖아. 헐! 핀란드는 2~3개월 전에 알아. 심지어 초등은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알아. 

우리는 기초학력 보완교육 하려고 방과후에 남기려면 온갖 눈치 보고 민원에 시달려야 하잖아? 헐! 핀란드는 교사에게 그냥 맡겨. ‘나머지 공부’ 경험하는 애들이 무려 70%야. 우리는 일제고사 다 없앴잖아? 헐! 핀란드는 중3 의무교육 끝날 때 일제고사 봐. 우리는 수업시간 내내 잠자도 졸업장 받잖아? 헐! 핀란드는 고3 졸업할 때 인증시험 봐. 논술형 시험을 과목별로 치르고 점수 낮으면 낙제. 

핀란드 제도의 철학은 ‘무지하게 확장된 교권’과 ‘복지국가적 책무성’의 결합. 혁신학교가 교사 학습공동체를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교사 학습공동체가 전제. 혁신학교가 배움 중심 교육을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배움 중심 교육이 전제. 혁신학교가 선진화된 교권을 지향했다면, 핀란드는 선진화된 교권이 전제. 이게 이미지로 소비되어 버린 핀란드 교육의 실체.

제주하고 대구에서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한다지? 이거 무지 핀란드적인 제도야. IB는 교사가 교육과정(성취기준) 만들고, 교과서 자유발행제이고, 교사는 자기가 담당한 학생만 평가해(교사별 평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시험삼아 해볼 만한 일 아니겠어? 혁신학교 문화하고 잘 들어맞잖아. 문화 없는 제도는 공허하지만, 제도 없는 문화는 맹목이잖아. 

교육감 너무 믿지 마. 진보도 기득권이야. 교육부 권한을 교육청으로 이양하라고? 허허. 교육부가 하면 갑질이고, 교육청이 하면 갑질 아닌가? 교육부가 내려보내면 잡무고, 교육청이 내려보내면 잡무 아닌가? 게다가 그러면 교사는 국가직 공무원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아무도 이런 얘기는 안 하더라고? 잘 들어. 교육부 권한은 ‘이양’하는 게 아니라 법제도를 정비해서 ‘소각’해야 하는 거야. 공문놀음 시수놀음 교과서놀음 이원목적분류표놀음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를 한참 불태워 없애 버려야 하는 거야. 

나는 원래 이 글 안 쓰고 싶었어. 혁신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개고생해 왔는지 알거든. 평론가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 미안하지. 하지만 혁신학교가 제도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육감과 교육청이라는 시야에 갇히고, ‘구성’이 아니라 ‘재구성’에 스스로를 제한한다면, 나는 감히 혁신학교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겠어. 아니, 진보교육 진영 전체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겠어.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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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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