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는 친구지만 마냥 반가웠다. 친구도 어떤 감정이 물밀었던 모양이다.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뻗으며 친구는 물었다. “어떻게 먹고사니?” 친구의 말은 우리를 둘 다 기쁨과 당황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친구는 아마도 “잘 지내지?”나 “어떻게 지내?”라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길 위에서 한바탕 사이좋게 웃었다.

집에 오는 길에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네 가지다. 대학교에서 학인들과 배움을 나누는 일, 격주마다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일, 매일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두세 차례 출연하는 일, 그리고 읽고 쓰는 일. 어떤 일은 나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고 또 다른 어떤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그 일을 할 때 비로소 내가 나로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든 일이 어색하다는 점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어색한 일도 있고 여전히 어색한 일도 있다. 몸담은 지 얼마 안된 일은 늘 어색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있다. 남들 앞에서 말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어떤 물음에 답하는 일, 답하면서 다음에 내가 던질 질문을 헤아리는 일, 이 일 앞에서 나는 보통 작은 상태로 존재한다. 종종 위축되는 것은 물론 겉으로 웃고 있을 때조차 속은 땀범벅이다. 대학에서의 강의,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 그리고 JTBC <시사토크 세대공감> 출연 등은 신출내기의 어색함이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처음 같은 일도 있다. 바로 읽고 쓰는 일이다. 이 일 앞에서 나는 때때로 묻는다. 실력이 늘지도 않고 적응이 되지도 않는데,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왜 읽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까. 20여년 가까이 썼는데 왜 아직도 백지는 나를 새하얗게 질리게 만드는가. 어색함은 으레 어려움을 동반한다. 이 어려움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얼어붙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나를 생생하게 한다.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머릿속에서 떠올린 문장대로 쓰지 못하고 있구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거나 너무 늦게 흐르는 것 같다. 그 시간에는 내가 없는 것 같다.

어색한 일은 맞지 않는 옷처럼 몸을 쭈뼛하게 만든다. 평소의 여유로운 내 모습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몰입이 필요하다. 신문을 애써 가까이해야 하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법한 기사에도 따뜻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한국문학사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책을 읽고 해당 저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발휘해야 한다. 백지 앞에서 초연해지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야 나는 비로소 어떤 상태에 다다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방송에 익숙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조리 있게 말하고 여유로운 나머지 방송용 미소로 씩 웃기도 할 때, 나는 아마 스튜디오에 없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 앞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므로, 몸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특정 발음을 뭉개버리기 일쑤다. 매번 출연하는 게스트가 다르니 그에 맞춰 나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빛나게 해주는 일은 기꺼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가끔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감각이다. 이 감각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깨어 있게 해준다. 나는 편한 쪽에서 불편한 쪽으로 한 발짝 움직인다. 날숨 상태에서 들숨 상태로 기꺼이 몸 상태를 바꾼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겠다는 태도다. 나를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어색함에 익숙해지겠다는 다짐이다.

삶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는 나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어색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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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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