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프로타고라스가 한 말이다. ‘척도’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잣대’다. 한자로 ‘척(尺)’인 ‘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길이 단위다. 포목점에서는 폭이 일정한 긴 천을 둘둘 말아 두루마리로 보관하다, 손님이 원하는 만큼, 눈금이 표시된 막대로 길이를 재서 끊어 팔았다. 자를 재는 이 막대기가 바로 ‘잣대’다. 한 자가 약 30㎝니 삼척동자의 키는 1m에 미치지 못하고, <삼국지> 구척장신 관우는 2.7m로 세계 신기록이다. 기네스북 감이다.

프로타고라스가 한 말에서 ‘인간’이 제각각 다른 개별적 존재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컫는다면, 사람마다 잣대가 다르니 나에게 한 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한 자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르니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의미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에서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모두를 가리킨다면, 사람에게 맞는 얘기라 해서 강아지에게도 맞는 얘기는 아니라는, 강아지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주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혹은, 모든 것을 인간의 시각에서 보겠다는, 인간중심주의 선언으로 볼 수도 있다.

왼쪽 발을 한 줄로 이어 붙여 여럿이 나란히 선 후 발 크기의 평균으로 1피트(ft)를 정했음을 보여주는 중세 유럽의 그림. 위키피디아

한국사 공부할 때 등장하는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은, 길이(度)와 부피(量), 그리고 무게(衡)를 재는 표준(잣대)을 하나로 정했다는 뜻이다.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부피는 가로, 세로, 높이 세 방향의 길이를 곱해 얻으니, 부피의 단위를 길이 단위와 별도로 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안에 가득 담긴 양으로 부피를 재는 됫박을 따로 만들어, 길이를 재는 잣대와 함께 쓰는 것이 현실에서는 훨씬 더 편했으리라. 무게는 돌림힘의 평형을 이용해 저울로 쟀다. 길이를 재는 잣대, 부피를 재는 됫박, 무게를 재는 저울을 국가에서 정한 것이 바로 도량형의 통일이다.

시간의 길이를 재는 잣대는 굳이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밤에 달을 보면 알고, 하루 중 지금이 언제인지는 낮에 해를 보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해의 길이는 나라 안 어디나 별 차이 없지만 계절에 따라서는 크게 변한다. 낼모레 하짓날, 서울에서 해는 오후 7시57분에 져서 다음날 오전 5시11분에 뜬다. 밤의 길이가 9시간14분으로 짧다. 동짓날은 거꾸로다. 무려 14시간26분이 밤이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 사람들에게 야간 통행금지 시간의 시작은 종을 28번 쳐서(인정), 끝은 다음날 새벽 북을 33번 쳐서 알렸다(파루). 밤 시간을 5등분한 것이 ‘경’이고 ‘경’을 다시 5등분한 것이 ‘점’인데, 일경에 해당하는 시간이 하짓날에는 111분, 동짓날에는 173분으로 무려 1시간의 차이가 난다. 사시사철 들쭉날쭉 변하는 잣대로 밤 시간을 쟀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정은 이경에, 파루는 오경삼점에 쳤으니, 하짓날에는 오후 9시48분에서 다음날 오전 4시27분, 동짓날에는 오후 8시10분에서 다음날 오전 6시34분까지가 통행금지 시간이었던 셈이다. 성문을 열며 동트는 새벽을 알려주는 것이 파루다. 우리 조상들은, 곡식이 빨리 성장해 부지런히 일해야 할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일했고, 추수가 끝나 한가한 겨울에는 느지막이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물리학에서는 시간이 여름밤과 겨울밤에 다를 수 없다. 뉴턴 역학과 칸트 철학의 시간은 관찰 대상의 변화를 측정하는 순수한 형식이다.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지만, 무얼 담아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빈 그릇이다. 과거, 동양의 시간 개념은 고전물리학과는 무척 달랐다. 우리 선조들에게 시간은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삶의 리듬에 맞춰져 있어 계절과 밤낮에 따라 함께 변했다. 해 뜨는 시간이 매일 다른데도 일출에 맞춰 하루를 시작했던 선조들이 우리 눈에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조들이 오늘 아침 우리를 봤다면, 해 뜬 지가 언젠데 여전히 잠자리에서 꾸물대는 후손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과학에도 잣대가 있다. 거리, 시간, 질량뿐만이 아니다. 전류, 온도, 물질의 양, 빛의 세기를 재는 잣대도 있다. 한국의 1m가 미국에서는 10m라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잣대에 대한 합의는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다. 모든 나라가 합의한 여러 표준잣대의 모음이 국제표준단위계다. 얼마 전까지도 질량 1㎏의 표준은 파리에 보관된 합금 덩어리였다. 외계인이 지구인의 1㎏이 얼마인지 알려면 굳이 파리를 방문해야 했다는 뜻이다. 이제 1㎏은 물리학의 기본상수인 플랑크 상수에 기반해 정해졌다.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되면, 1㎏이 얼마인지 이제 드디어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물리학의 잣대들이 우주적 규모의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면에서, 최근 발표된 국제표준단위계는 과학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foot(unit)’을 검색해보라. 1피트(ft)를 어떻게 정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중세 유럽 그림을 볼 수 있다. 왼쪽 발을 한 줄로 이어 붙여 여럿이 나란히 서고는, 발 크기의 평균으로 1피트를 정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람마다 발 크기가 모두 다른데, 내 발만 특별하다고 우기면 우리는 공통의 잣대에 합의할 수 없다. 필자는 이 그림을 보며, 현대의 민주주의를 떠올렸다.

삶에도 잣대가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남의 잣대가 나와 다르면,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내 잣대를 먼저 의심해보는 성찰적 회의도 중요하다. 서로의 잣대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많은 이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 잣대를 찾아가는 지난한 노력의 이름이 민주주의다. 또, 민주적인 방법으로 숙의를 거쳐 합의한 결과라면 내 잣대와 달라도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내 발만 발이 아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