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때 본 구름이 그야말로 뭉게구름. 가끔 따갑던 해가 안 보여서 좋아. 고되던 시집살이, 모두 안 보이고 혼자 남은 할머니. 이제 좀 홀가분한데 왠지 외로워 보여. 대나무로 검은 차광막을 얼기설기 쳐놓고서 여름을 난다. 뭉게구름은 열심히 따가운 햇볕을 가려보지만 차광막만 못해. 할머니는 애를 쓰는 뭉게구름의 사랑을 알까. 부채를 하나씩 들고 모정에 모여 맘속에 담아둔 얘기 나누던 날도 많았다. 요샌 회관에 달린 에어컨이 대세. 에어컨을 켜고 앉았으면 어디선가 쪄온 옥수수가 나온다. 여기선 ‘옥시시’라고 한다. 옥수수 하나로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해진다. “여그가 천국이재 뭘라 싸돌아댕개. 더우엔 가만히 자빠져 있는기 상책이여.” 그러면서도 자녀들이 고향집에 하루라도 들렀으면 바란다. 누워 있다가 궁둥이에서 방귀가 뒤따르면 푸하하들 웃고….

언젠가 말재간꾼 김제동이 그랬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행운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그건 행복입니다.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짓밟고 다니지는 않습니까?” 현대인들은 뭔가를 다들 쫓아다니는데, 행복이 아닌 행운이 아닐까. 꼬무락꼬무락 거동하는 어매들. 길쌈하고 물레 돌리고 고추를 말리고 콩대를 털던 마당, 세월이 지나 아이들 그림자 하나 놀지 않는 빈 마당에서 홀로 허리를 편다.

우리 동네엔 빨치산이 지리산 자락을 타고 추월산, 병풍산까지 쏟아져 내려왔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던 손을 급히 놀려서 옥수수와 감자를 한 바구니 쪄주던 할머니들이 있었다. 배고픈 자식은 남이나 북이나 아군이나 적군이나 보고선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어머니요 아버지였다. “우리나라 어머니 품을 떠나서 헤매던 형제들 어서 뭉치세. 백설단심 끓는 피 깨끗이 받아 한을 풀고 찾으세. 화려 삼천리….” 독립군들의 노래 ‘우리나라 어머니’에 나오는 그 어머니들. 품이었던 분, 고향집이었던 분들. 그래서 이곳은 고국산천, 화려삼천리 아닌가.

동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갈 때, 꼬무락꼬무락 낮게 별자리가 뜬다. 세 잎 클로버도 보이고 네 잎 클로버도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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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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