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뜨거운 해가 아파트 단지 뒤로 기울어지면 더위를 피해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네댓 살 아이들은 씽씽카를 타고, 예닐곱 살 아이들은 뒷바퀴에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나름 질주한다. 이들 사이를 두 바퀴 자전거로 헤집고 다니는 초등학생들은 여유작작하다. 특히 보조 바퀴를 막 떼어냈을, 두 바퀴 자전거 초보 운전자의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보조 바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은 세상을 자신이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열한 살의 그도 자신만만했을 것이다. 붙임성이 있어서 아파트 단지 내에 어른을 볼 적마다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어른과는 친구가 되어서 오후 산책 때마다 동행하는 그는 요즘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친구 하나와 말다툼을 했는데, 자신을 편들어 주던 아이들이 그에게 엄포를 놓았단다. 싸운 아이와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싸운 친구와 화해하고 싶어져 아파트 단지에서 만났을 때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일로 제 친구들이 저하고 말을 안 해요.”

그는 함께 산책하는 이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먼저 화가 풀릴 수 있잖아요. 화가 풀렸는데 왜 계속 화내야 해요?”

아이는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싸운 친구와 화해하면서 다른 친구들을 잃게 된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와 함께 산책하던 이는 아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네 선택이 옳았어. 좀 기다려봐.”

“정말 기다리면 될까요?”

뜨거운 바람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여름 오후, 그들의 대화는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느껴졌다. 이 여름이 지나면 열한 살의 아이는 치열한 자신의 싸움을 이겨내고 한 뼘 더 자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어른이란 보조 바퀴 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혼자 잘 달릴 때까지 잘 붙어 있는 것만큼이나 제때 잘 떨어지는 게 중요한.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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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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