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당국이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했다. 속내야 뻔하지만, 당국자가 내건 명분은 “테러 예고나 협박 전화 등도 있고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통을 들고 가겠다는 팩스도 들어왔”으므로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공중의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한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범이다. 예컨대 사람이 가득 찬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행위 따위는 표현의 자유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협박 전화나 팩스가 들어왔다는 점은 명백하지도 현존하지도 않는 위험이다. 공권력은 오히려 이런 따위의 비열한 협박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앞으로 일본에서는 누구든지 전화 한 통, 팩스 한 통만으로 얼마든지 헌법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을 것이니, 일본에서의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말았다 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2005년 덴마크의 한 신문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테러범처럼 풍자한 만평을 실었다가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1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테러범들은 대개 의법 조치되었으며, 3년 뒤에 덴마크 17개 신문과 유럽 다른 나라의 신문들이 동시에 그 만평을 실었다. 이 신문들은 표현의 자유를 테러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한 것이다.

물론 이 만평은 이슬람포비아에 기대고 있으며, 타 종교에 대한 편견과 비난이 매우 강력했다. 애당초 그 만평을 신문에 싣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나는 판단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공론장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 테러나 어떠한 외압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적 위험’을 빌미로 삼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더구나 이번 전시회가 ‘표현의 부자유’를 테마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였다. 패전 후 일본이 군국주의적 역사를 부정하면서 고통스럽게 다져온 민주주의가 아베 정권에 이르러 퇴각하고 있음을 지켜보는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한국에도 이런 검열이 횡행하던 시기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대표 격이다. 정권이 바뀌어 정치권력의 검열은 거의 사라졌지만 자본권력이나 종교단체 등의 민간에 의한 검열 행위는 알게 모르게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의 자기 표현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타자의 자기 표현에 관대해져 보자. 나는 ‘박근혜 석방’에 반대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사람의 권리는 존중한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동성애자의 자기 표현 역시 존중한다.

한국의 현재 법체계는 공론장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명예훼손이라는 전근대적 처벌 규정은 지나치게 강력하여 공적 비판이 자칫 처벌받을 수 있으며, 반면 가짜뉴스나 혐오 표현 등 공론장을 갉아먹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은 미비한 것이다. 이런 법체계부터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아베 정권의 폭거를 비판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공론장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핵심적이다. 일본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극일이 아니겠는가.

<한만수 | 동국대 국문문창학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