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0대 후반의 스위스 여성이 미국 국경을 통과하려다 세관원의 제지를 당했다. 여권의 사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손가락 지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스위스 바젤대학의 피터 이틴은 ‘입국심사 지연’ 질환이라고 비유했다.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식 중 하나로 지문이 자리 잡은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진나라 관리들은 사람마다 각기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시시피에서의 생활>이란 책에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지문을 이용해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했다. 국가에 의해 의무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에 편입될 때 만 17세가 되는 우리 청소년들은 반드시 지문을 등록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법의학이나 범죄수사에서 흔히 사용되곤 하는 지문의 생물학적 기능은 무엇일까? 어떤 과학자들은 촉촉한 지문이 잡은 물건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종이를 연거푸 넘길 때 손가락 끝이 건조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듯도 싶다. 지금은 보기 힘든 일이 되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손가락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지폐를 세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무에서 주로 생활하는 코알라가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관찰도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촉각과 관련된 기능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엄마 배 속에서 여섯 달이 지나는 동안 발생이 완결되는 지문에서 땀샘과 그에 연결된 몇 가지 신경세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전을 손가락으로 만져서 그것이 500원짜리인지 100원짜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 자판기 투입구에 실수 없이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는 지문과 피부 아래 신경이 없으면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지문과 결부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지문의 돋은 능선을 따라 일정하게 배열된 땀샘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호젓한 산길에서 호랑이를 마주칠 일은 이제 없겠지만 직장 상사나 면접관을 대면해야 할 일은 흔히 생길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에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주변을 살펴 돌멩이나 작대기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바탕 접전을 치르거나 도망할 때는 손바닥 땀이 소용 있을 수 있겠지만 상사의 면전에서 그것은 별 쓰임새가 없다. 이렇듯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은 가끔 구닥다리 신세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트레스 반응일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에 혈액을 듬뿍 보내고 눈을 부릅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일은 석기시대에는 필수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적을수록 좋다. 

어쨌든 지문은 손에 예민한 촉각 기능을 부여하면서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목욕탕에 있다가 나왔을 때 손가락이 불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유독 손가락 끝이 더욱 그렇다. 피부 각질이 물을 머금어서 혹은 혈관이 수축해서 그렇다는 둥 몇 가지 이유를 대지만 기실 이 현상에는 신경계가 관여한다. 손목 신경을 다친 사람의 손가락이 물속에서 붇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어슷하게 홈이 파인 타이어처럼 물속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우리 손가락이 일시적으로 변형을 치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문이건 주름이건 우리 손바닥과 손가락은 참으로 특별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미국 입국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저 여성의 손가락에는 왜 지문이 없었을까? 먼 친척을 포함해 여성의 가족 중 일곱 명이 지문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과학자들은 그 증상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 피부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털이나 손톱을 구성하는 주된 단백질인 케라틴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에도 간혹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문 없는 저 스위스 여성은 단지 촉각이 좀 무디고 종이돈을 잘 세지 못하는 불편함 말고 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을까? 기자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여성은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했다. 수영장에서도 발만 물에 담그고 앉아 있었을 뿐 친구들과 함께 헤엄을 즐길 수 없었다. 약간만 근육 운동을 하면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열을 내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 잘 느끼지도 못한다. 인간의 신체가 되먹임 체계를 적절히 가동하면서 언제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땀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부는 ㎠당 약 150~340개에 이르는 에크린 땀샘을 구비하고 효율적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우리는 약 200만~500만개의 땀샘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가장 많이 분포한 땀샘은 머리에서 몸통, 사지로 내려가면서 그 수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지문에 박혀 있는 땀샘도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박동하듯 에크린샘을 통해 피부로 일분에 땀을 최대 스무 차례나 주기적으로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일은 침팬지나 고릴라 그리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포유동물의 경우 에크린샘은 역할이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 코끼리는 혈관이 풍부하게 분포한 귀를 팔랑거리거나 주름진 피부로 표면적을 늘리면서 적도의 더위를 견딘다. 개나 고양이는 주로 헐떡이면서 체온을 식히지만 인간처럼 땀을 흘리지는 않는다. 대신 발바닥에 땀샘이 풍부하다. 이들과 달리 우리 인간은 몸 표면과 공기의 경계면에서 충분히 땀을 흘리고 그것을 증발시키면서 체열을 떨어뜨린다.  

현대에 들어 인류는 오래되었지만 완성도가 높은 ‘땀 흘림’이라는 우리 몸의 생리학적 되먹임 기제 대신 화학 에너지가 듬뿍 가미된 전기 온도조절 장치에 대한 의존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시동 켜진 자동차 옆을 지나가기 무섭고 에어컨 실외기 앞의 회양목이 가뭇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덥고 습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