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쓰레기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 손에서는 그랬다. 나는 쓰레기를 잠깐씩만 만져왔으므로. 더구나 쓰레기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직 쓰레기가 아니었으므로. 쓰레기란 내가 원하는 물질을 깨끗하게 감싸던 것. 손과 물건 사이의 얇고 가벼운 한 겹. 버리고 돌아서면 사라지는 기억. 그래서 아주 잠깐이었던 무엇.

그다음 단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잊은 쓰레기를 손으로 만지는 이들이다. 쓰레기와 관련된 어떤 노동자들은 밤에만 일해야 한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을 보는 것조차 불쾌해할지도 몰라서. 자기 손을 떠난 쓰레기를 곧바로 혐오스러운 남의 일로 여기곤 해서. 나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지만 내가 떠난 자리에 그들이 다녀갈 것을 안다. 쓰레기가 쓰레기인 시간이 그들에겐 짧지 않을 것을 안다.

또 어떤 쓰레기들이 있는가. 의류 수거함에는 입다버린 옷이나 작아진 옷이나 망가진 옷뿐 아니라 오물이 묻은 수건이나 옷이 아닌 쓰레기도 담긴다. 그 모든 게 한데 모여 ‘자원’이라는 곳으로 옮겨진다. 그곳에 가면 헌옷과 쓰레기만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언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언덕에 올라 일하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 중 하나는 나의 엄마 복희다. 복희는 헌옷으로 된 언덕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일했다. 어떤 버려진 옷은 유달리 더럽다. 어떤 쓰레기가 특히 쓰레기인 것처럼.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복희는 다시 입을 만한 것을 찾아내 사오고 깨끗이 손질하여 팔았다. 그 일을 하고 온 날에는 몸살을 앓곤 했다. 손이며 무릎이며 온몸이 욱신거린댔다. 나는 복희가 파는 옷들을 주로 입으며 자랐다. 아름다운 옷들도 많았다. 지금까지도 나의 옷장에 남아있는 옷들이다. 너무 많은 옷이 너무 빨리 만들어지고 너무 조금 입은 뒤 너무 쉽게 버려지는 세상이라 복희가 오를 언덕은 언제고 계속 생겨났다.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복희는 새 옷을 잘 사 입지 않는다.

7월4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앞바다에서 한 어선이 수면 위로 떠오른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이날 태안군서부선주협회는 청결한 해양환경 조성을 위해 소속 어선 150여척을 동원해 폐어구, 스티로폼, 플라스틱, 말풀 등 해양쓰레기 30여t을 수거했다.연합뉴스

쓰레기로 된 언덕은 바닷속에도 있다. 거의 모두가 모르고 지나가는 쓰레기다.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만이 그 쓰레기를 안다. 나는 아직 이야기로만 들어보았다. 누군가가 잠수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고 몸 여기저기에 납 벨트를 찬 채로 입수한다. 수면 아래로 깊이 내려가기 위해서다. 지상으로 연결된 호스를 통해 숨을 쉬어가며 바닷속 쓰레기를 치운다. 산업 잠수사들의 일 중 하나다. 그들은 육지에서 하는 대부분의 막일을 수중에서도 할 줄 안다. 나의 아빠 웅이의 직업도 산업 잠수사였다. 바닷속에서 어떤 쓰레기를 보았느냐고 내가 묻자 웅이는 보지 않았고 만졌다고 대답했다. 물속은 아주 탁하고 어둡기 때문이다. 쓰레기는커녕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다댄 자기 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시야가 나오지 않는 광활한 찬물 안에서 웅이는 쓰레기를 치운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가며 치운다. “보이지 않아도 만지면 알 수 있어. 자전거구나. 드럼통이구나. 페트병이구나. 캔이구나. 비닐이구나.”

손에 눈이 달렸다는 말은 잠수사들 사이의 관용구다. 웅이는 익숙한 쓰레기들을 바다 위로 올려 보낸다. 그는 생생한 악취를 맡는다. 바닷물의 냄새를. 쓰레기의 냄새를. 오염된 물의 냄새를. 나는 쓰레기 언덕에 올라보지도, 바닷속 쓰레기를 만져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쓰레기가 쓰레기인 시간이 내 부모에게 결코 짧지 않았음을 안다.

그리하여 이 쓰레기를 가장 오래 겪을 이 세계를 생각한다. 세계는 우리 모두를 품고 있기 때문이며, 썩지 않은 무수한 것들과 함께 미래로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쓰레기는 거북이의 콧구멍에 꽂히고 바다사자의 목을 조르고 돌고래의 배 속을 채우고 아기 새의 목구멍에 들어간다. 어떤 쓰레기는 수출되었다가 돌아오고 어떤 쓰레기는 방대한 섬이 되고 어떤 쓰레기는 내일도 생산되어 내 손을 잠깐 거친 뒤 잊고 싶은 곳에 쌓여갈 예정이다. 내가 배운 언어가 적힌, 익히 아는 쓰레기들이다.

모두가 버리지만 모두가 치우지는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잠깐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보는 부모와 자식과 자식의 자식과 노동자와 옷가게 주인과 잠수사와 소설가와 시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생이 스며드는지.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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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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