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KTX를 타고 학교 선생님들과 서울 출장을 가게 되었다. 공휴일 오전 8시,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열차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여럿이 동행하다보니 자리를 확인하고 앉는 과정에서 일행의 목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는지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무원이 와서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우리들은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금세 입을 다물었고 열차는 이내 침묵에 잠겼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이의 휴식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졸지에 상경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촌스러운 행동으로 취급받은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 불편함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광주~서울행 KTX를 이용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열차 안의 풍경이 삭막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수면 열차인가? 언제부터인지 열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 혼자서 조용히 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침묵에는 상대의 존재를 수용하고 배려하며 기다리는 부드러운 침묵이 있고, 상대의 존재를 배제하고 억압하며 강요하는 불편한 침묵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는 것은 여행 목적지에서 하게 되는 일보다 더 많은 의미와 기쁨을 주는 시간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앞자리에 앉은 승객으로부터 “조용히 하라”는 항의를 받고 나서 나는 열차 안에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조용한 대화였다고 생각했지만 대다수의 승객이 자고 있는 상황에서는 소곤거리는 대화조차도 우리가 앉은 좌석의 앞뒤 사람에게는 들릴 수밖에 없었다. 열차 안내방송은 주기적으로 정숙할 것을 요구하고, 승무원들의 제지, 이런 것들이 본래 의도와 달리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의 울음조차 여유롭게 봐주질 않는다. 언젠가는 아이가 울자 한 승객이 승무원을 불러 세워 아이와 동승할 수 있는 8호차를 타게 하지 왜 일반실을 타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따지는 것을 보았다. 

교실 풍경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으로 조용하지만 생기가 없는 교실, 교사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교실, 튈까 두려워 조심하게 되는 분위기, 지루하고 무표정한 학생들의 표정이 승객들의 표정과 오버랩된다. 반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자신의 욕구만 내세우는 교실도 있다. 규칙은 유명무실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교육의 공간이라 부를 수 없는 교실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질서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혼란 없이는 어떤 것도 생성될 수 없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질서와 예기치 않는 상황에 열린 마음을 갖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견딜 수 있는 인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열차라는 공적 공간에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달라 충돌하게 될 때 성급히 반응하며 자신의 입장이 옳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망설이다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속으로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주로 선택한다. 그럴 때 좀 더 자신의 입장을 보류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따뜻한 시선과 여유를 갖고 견뎌보는 것은 어떤가? 어쩌면 성숙해 간다는 것이 관계 속에서 긴장을 견디며 자신이 포함할 수 있는 테두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손연일 |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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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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