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송건호는 1979년, ‘이승만 박사의 정치사상’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李박사처럼 시비가 많았던 사람도 드물지만 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인물도 드물다. 그가 말하는 ‘국가’란 곧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개인 이승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평가, 즉 그가 미국을 협박하여 안보 자원을 얻어낸 건국의 아버지(애국자)라는 주장과 해방 후 새로운 점령자인 미국으로의 종속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입장(사대주의자)은, 동일한 논리가 아닐까. 이광수의 ‘친일 내셔널리즘’처럼, 그에게 미국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겸사겸사 좋은 일이었다. 애국도 하고 국부로 등극했으니 말이다. 

1946년 10월, 당시 이승만을 취재한 시카고 선(紙) 특파원 마크 게인의 평가대로, 그는 파쇼가 아니라 파시즘보다 2세기 이전인 ‘(무능력하면서 왕족 행세나 하는) 부르봉파(派)’ 수준의 인물이었다. ‘미국 박사 이승만’은 근대의 상징이 아니라 봉건적인 인물이었다는 언급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74년이 과연 ‘진정한 광복(光復)’의 시간이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언제나 우리의 8월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올해는 아베로부터 시작된 도발과 그 파장으로 인해 대내외적 대립이 유난했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온 논쟁,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 지배, 약탈했고 우리는 저항했다”와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도입, 실현되었다”는 이분법이 여전히 반복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근대는 식민지를 동반한 근대화였다는 점에서, 위의 두 가지 주장은 동일한 논리다. 제국주의가 수탈을 하려면 식민지에 철도와 항만을 만들어야 하고, 노동력도 착취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이 일본 우익의 논리대로 한반도를 문명화시킨 것은 아니다. 동시에 식민지 국가에는 부역자가 있기 마련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지위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그들도 내부의 계급과 성별, 인종에 따라 근대화의 경험은 천차만별이었다. 서구 역시 근대 국민 국가는 지향이었을 뿐 현실이 아니었다. 국민들 간의 불평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성은 이등 국민이었고, 흑인은 노예였다. 국가 단위를 넘어서(트랜스 내셔널) 사유하지 않는다면, 흑백 논리는 지속될 것이다. 

역사는 깔끔하지 않다. 역사는 팩트라기보다는 해석, 여파(餘波)에 가깝다. 팩트도 누군가의 기록이며 인간의 인식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사(正史)나 정명(正名)을 시도하는 작업은 위험하다. 배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는 다양한 목소리들의 경합 과정에서의 윤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기록이 없기 때문에 군 위안부는 없었다”거나 “증언은 무조건 진실이다”라는 주장은 모두 신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보와 보수 불문, 한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은 스스로를 양 진영의 대표자 혹은 순교자, 저항자로 자처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유일한 진실이라 확신한다는 것이다. 우리 내부 인식의 분단체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문화 지체 현상’을 겪었다. 이제는 좀 더 나은 논쟁을 할 의무가 있다. ‘친일파’ ‘빨갱이’처럼 편리한 정치적 도구(낙인)가 있는 한,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사회·문화적 검열이 국가보안법보다 무서운 세상이다. 예전의 다른 목소리는 ‘민주화 열사’였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증류수 같은 순수한 현실은 없다. 하물며 식민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진 근대의 글로벌 자본주의체제에서 문화의 잡종성(hybridity), 모순은 당연하다. 식민주의는 한일합병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가 1945년 8월15일 중단된 그런 체제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은 싫어하지만 ‘일본산(産)’은 좋아한다. 한국 사회에서 반도체 부품만 일본의 것인가? 재일 조선인의 노동 없이 일본의 근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제 성장을 한국전쟁과 한반도 분단 없이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유는 식민주의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이른바 포스트 콜로니얼이라는 상황 인식이 아닐까. 포스트 콜로니얼이 ‘~ 탈(脫·de), 탈식민주의’로 번역되면서 마치 식민주의가 끝난 것처럼 오해되고 있지만, 식민주의든 자본주의든 가부장제든 경험은 몸에 각인되기 마련이다. ‘포스트’는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반대, 대항, 변환, 넘어섬, 해체, 문제 제기, 극복 등 다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국민국가, 포스트 휴먼처럼 포스트는 ‘어떤 것 자체이면서 더 이상은 그것이 아닌 것’에 가깝다. 공식적 주권 회복 이후에도 지속되는 식민주의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피해의식이나 선진국 콤플렉스 대신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과정이 진정한 탈식민 아닐까. 

‘이승만 학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승만의 정치경제사상, 독립운동과 건국의 업적을 연구, 교육, 홍보하는 곳이다”. 이승만에게 ‘정치경제사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지만, 나는 이런 학당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승만 학당은 그의 업적을 홍보하는 곳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찬반 논쟁, 식민지냐 근대화냐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논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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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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