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주도하는 악덕 업주나 호시탐탐 백성들의 등골을 탐하는 탐관오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직업 때문에 나는 출판된 과학 논문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보건원 도서관 웹사이트인 펍메드(pubmed)를 방문한 뒤 벼룩과 간을 검색어로 집어넣고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논문은 더러 있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논문은 찾지 못했다. 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벼룩은 과연 심장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몸집의 길이가 2㎜에 불과한 물벼룩도 심장이 있어서 소화기관을 거쳐 온 영양소를 온몸으로 분배한다. 심장은 폐를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와 간을 통해 역시 몸 ‘안’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전신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폐와 간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먹을거리인 산소와 영양소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1차 관문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동물의 간과 폐가 소화기관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른 기관과 비교하였을 때 간은 혈액이 들어오는 통로가 두 개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은 뇌, 근육, 콩팥 그리고 간으로 들어간다. 이들 기관에 산소와 신선한 영양분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기관을 통과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대사 폐기물을 회수한 혈액은 정맥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심장을 중심으로 우리 몸은 이렇게 한 번의 순환을 매듭짓는다. 하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몸의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는 소화기관에서 어떤 경로를 따라갈까?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내부 기관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나는 소화기관을 ‘내 안의 밖’으로 간주한다. 입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폐를 거쳐 심장으로 가듯 소화기관에서 아주 잘게 잘린 영양소들은 주로 작은창자에 연결된 모세혈관을 타고 간 문맥(portal vein)을 거쳐 간으로 들어간다. 심장에서 하나 그리고 소화기관에서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통로를 거쳐 간으로 혈액이 들어온다. 따라서 간은 음식물을 따라 들어올 수도 있는 독성물질이나 이물질을 선별하고 독성을 제거한 다음 이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 

이런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과학자들은 간이 출입국을 관장하는 세관과 같은 업무를 맡는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다른 일부 과학자들은 순환계에서 영양소를 끌어내는 일이 간의 본디 업무였다고 말한다. 사실 알을 낳는 동물들은 그들의 후손이 독립적인 완결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필요한 물질 모두를 노른자(난황(卵黃))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물질은 난황형성 단백질인데 영양소 집하장인 간에서 이 지질단백질을 만든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간세포를 직접 분리해온 나는 현미경으로 간세포를 보면서 늘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뒤 초파리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앗, 간세포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5㎜도 채 되지 않는 곤충의 몸 안에 인간의 간세포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소화기관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지방과 단백질을 저장하고 그중 상당부분을 후손에게 할애한다. 벼룩이나 꼬마선충 같은 아주 작은 동물은 간의 역할을 겸한 소화기관에서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든다. 동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든 척추동물들은 영양소가 풍부하지 못한 환경에서 진화했다. 곰처럼 육식을 하던 판다가 왜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는지 저간의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매일 체중의 10분의 1이 넘는 양의 대나무를 먹어야 한다. 하루 14시간 넘게 먹어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고 번식을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뭄이 들거나 병충해가 자심하면 대를 잇는 일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좋을 때까지 번식을 유예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번식 과정에는 성호르몬이 관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양 상태에 관한 정보도 중요하다. 이 두 과정에서 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간은 생식기관에 성호르몬의 재료인 콜레스테롤을 공급한다. 하지만 아미노산과 같은 필수영양소가 풍부한지 아니면 부족한지에 관한 신호도 동시에 내보낸다. 만약 영양소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오면 생식기관은 성호르몬 신호가 오더라도 반응하지 않는다. 생식 주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인간 여성에서도 벌어진다. 거식증으로 시달리는 여성들은 아예 월경을 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알을 낳는 대신 배아를 자궁에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알을 낳는 일처럼 이 과업도 두 생물학적 성(sex) 중 여성에만 국한된다. 알을 낳지 않으니까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산모는 이 고분자 물질과 같은 계열의 지질단백질 및 콜레스테롤을 생식기관에 공급하고 저장된 지방과 포도당을 태아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여성들이 허벅지와 엉덩이에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하는 생물학적 이유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에게 한동안 젖을 먹이는 일도 여성의 몫이다. 이때도 여성의 간은 생식과 대사 기능 사이에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간은 일종의 생식기관이다.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주도하는 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물질 대사의 정치(精緻)함은 남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남성의 혈액은 에스트로겐의 양도 적고 그 호르몬을 인지하는 수용체 단백질도 여성의 3분의 1에서 5분의 1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과 남성의 간은 다르다. 흔히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말할 때 뇌의 기능을 언급하지만 남녀 간 뇌 유전자 발현의 차이는 14%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간의 유전자는 양성에서 72%가 다르게 발현된다. 주로 지방 대사, 면역 그리고 독성물질의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여성의 간에서 특별히 더 활성화된다. 지방 조직 유전자의 발현도 68%의 성차를 보인다. 먹고살며 후대를 계승하는 일에 남성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생물학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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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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