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안팎이 여러 갈래의 갈등으로 찢긴 마당에 조국이라는 또 하나의 균열 축이 나라를 갈라놓았다. 

불편하다. 정치 역할 중 하나는 시민들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바쁜 시민들에게 문제 해결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불확실하고 시민의 욕구·가치와 어긋날 것은 확실해 보이는 선택지를 내놓았다고 해보자. 이 경우 내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지키기 위해 나의 욕구·가치를 배반하는 선택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내 욕구·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지를 거둬들여야 할까?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정치’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불완전 대안을 내놓고 선택하라며 ‘시민을 괴롭히는 정치’를 한다.

혼란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임명한 윤석열은 개혁 주체인가, 개혁 대상인가? 마침 윤석열이 조국 의혹을 규명한다며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고 국회 인사 검증권을 납치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자 ‘윤석열 잡는 조국’의 논리가 사후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검찰개혁 법안은 이미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조국이 할 게 별로 없다. 검찰의 중립성이 개혁의 목표라면 살아 있는 권력 조국을 수사한 윤석열은 중립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패스트트랙 사건을 경찰에서 넘겨받기로 함으로써 자유한국당이 다음 표적이 될 것을 예고했다. 황교안·나경원도 살아 있는 권력이다. 검찰 중립성이 검찰 권력 비대화로 나타나지 않게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검찰과 악연을 맺은 조국이 사적 개입과 정치적 판단 없이 민주적 통제, 중립성 보장, 검찰 비대화 억제를 모두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의 정치 개입을 부른 쪽은 정치권이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과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서로 고소·고발하며 검찰에 먹잇감을 준 결과다. 그동안 검찰개혁이 실패한 것은 정치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정치개혁 없이 성공할 수 없다.  

헷갈린다. 조국이 문 대통령을 지키는 건가, 문 대통령이 조국을 지키는 건가? 문 대통령 지지자는 문 대통령만큼 조국 지키기에 적극적이다. 사실 문 대통령 말고 조국처럼 치열한 검증을 거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공직에 오른 인물이 없다. 조국은 단순한 내각의 일원이 아니다. 조국을 잃으면 문재인 정부도 잃는다. 이제 조국은 문재인이다. 조국 비판은 문 대통령 비판과 같고, 문 대통령 지지는 조국 지지와 같다. ‘조국 내각’ 또는 ‘문재인·조국 정부’의 출범이다.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2기, 즉 ‘문재인·조국 정부’는 1기와 다른 질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1기 때도 타협 부재의 정치를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동의와 설득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를 의식하고 압박감도 느꼈다. 2기는 그런 부담감을 훌훌 털어내고 순수하게 권력이 발언하는 국면이다. 문 대통령도 그걸 각오하고 온갖 불리한 상황을 돌파한 것 같다. 권력은 권력을 지키려는 의지에 비례해 공고해진다. 타협하다 밀리면 계속 밀리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의 역사가 증명한다. 지지를 잃으면서도 여권이 조국 지키기로 결집한 것도 권력의 본질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지, 조국이 이 시점 그 자리에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제 각각 권력을 쥔 세력은 이미 의지의 동맹을 구축해 대결에 돌입했다. 천방지축 윤석열의 검찰권력, 조국의 검찰 통제권, 문 대통령의 통치권력, 그리고 보수야당의 저항권력 간 불꽃 튀는 충돌이 시작됐다. 온건 지지층, 중도층, 관망층은 떠나고 선수들만 등판한 이 충돌장에서 비전과 가치는 별 힘을 쓰지 못한다. 

조국의 등장으로 부각된 이슈, 즉 진보·보수를 넘는 기득권 문제는 진지하게 사회적 논의를 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였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인 공정·정의는 과연 위선적인지 충분히 토론해볼 만했다. 그러나 생산적 토론의 기회는 한순간 등장한 진영 대결로 사라졌다. 이념, 세대, 가치, 지역에 따른 다양한 관점과 생각의 차이는, ‘당신은 어느 편인가?’를 묻는 한마디에 묻혀버렸다. 당신이 공정·정의를 우선하는 사람인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조국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오직 이것만이 문제다. 

그러나 권력을 권력으로 유지하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한 법이다.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비전·가치·도덕성과 같은 소프트파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하드파워는 언젠가 도전받는다. 그걸 알 때까지 우리 모두 극한 정치를 견뎌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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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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