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기차역은 한산했고, 기차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몇십년 전 명절을 앞두고 부산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시절, 완행열차가 비둘기호라는 제법 낭만적인 이름을 달기 전 장항선의 귀성 열차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와 같았다. 낯선 이들과 어깨가 겹쳐지고, 다리가 엇갈리고, 등이 붙은 자리조차 비집고 서지 못한 이 중에는 선반 위로 올라가 짐 보따리 틈을 노렸다. 행여 표를 끊고도 기차에 오르지 못할까 봐 앞다퉈 출입문으로 몰려드는 이들의 아우성으로 매번 정차 시간이 길어졌는데, 놀라운 건 어떻게든 죄다 탄다는 것이다. 나도 동생들과 함께 반쯤 열리는 유리창을 통해 기차에 오른 적이 있다. 내 아버지와 생면부지의 어른이 우리를 안아 올려 기차 안으로 밀어 넣으면, 기차 안에 앉아 있던 이들이 잡아끌어 올렸다. 전쟁통에 목숨을 부지하려고 피란 가는 길이 아니라, 그저 고향 집에 가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려고 그 난리를 치렀다.

아마 직접 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최고 시속 80㎞의 완행열차는 사라진 지 오래고, 세상은 KTX의 속도로 변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아녀. 일도 많고 차도 맥혀 힘들 거인디 뭐던다고 내려와야. 나가 요로코롬 얼굴 보고 가믄 되제.”

익숙한 말이라서 슬쩍 옆을 돌아봤다. 옆자리 노인은 서울에서 가게를 시작하는 자식한테 다녀가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몇 번이고 추석 때 내려올 거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던 때 우리 할머니가 내 부모에게 하던 말이고, 지금은 내 어머니가 내게 하는 말이다. 바쁘면 오지 마라, 차 막히는데 오지 마라, 금방 가야 하는데 오지 마라. 그들은 말은 그리하고도 며칠 동안 음식을 준비한다.

나와 같은 역에서 내린 노인은 역 안 추석맞이 특산물을 파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노인은 잘 튀겨진 김부각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이거 애들이 잘 먹겠네. 아마도 그는 집에 가자마자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며 오지 말라 한 자식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일 때문에 김부각을 먹어볼 틈이 없었지만, 뒤를 힐끔댔다. 우리 딸도 김부각을 잘 먹을까.

<김해원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