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횡행했던 관제 구호 중 하나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였다. 당시 정권은 중·고등학생들을 ‘자연 보호 활동(쓰레기 줍기)’에 동원했다. 언뜻 들으면 뜻도 심오하고(?) 운율도 맞는 말 같지만, 성립할 수 없는 언설이다. 인간은 자연의 미미한 일부분. 인간이 무슨 삼라만상의 조물주라고 자연을 보호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주제 파악이 안된 과잉 자아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논리도 “자연은 우리 편”이라는 인간 위주의 발상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다. 둘은 간혹 조우할 뿐이다. 자연재해는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한국은 인구, 면적으로 보면 작은 나라지만 좋은 의미든 아니든 ‘세계 1위’ 항목이 많다. 가정폭력, 교통사고, 청년 자살률과 더불어 전 세계의 수천, 수만 개일지 모를 항공 노선 중 운항 편수 1위가 ‘김포(서울)~제주’ 구간이다. 거의 1~2분마다 이착륙이 이루어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예전에 제주에 가면 택시기사들이 “서울에서 왔냐?”고 인사를 건넸는데, 지금은 “한국 사람이죠?”라고 묻는다. 제주 내부의 차이, 경계(境界)가 크게 변한 것이다. 최근 조금 열기가 덜해진 것 같긴 하지만 관광객과 부동산 소유주의 중국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는 “제주 관광의 세계화” 업적을 자랑했다가 “90%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팩트 폭력’을 겪은 바 있다. 제주가 크게 붐비기 시작하자 2015년 제2공항 건설론이 등장했다. 적합지는 일출로 유명한 성산읍 일대였고, 항간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올해 9월20일, 국토교통부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이 평가서는 해당 사업계획이 환경에 미치는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 등을 검토한다. 환경부는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국토부에 보냈고, 국토부는 보완을 거쳐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한 상태다. 본안이 환경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판단되면, 국토부는 10월 제2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제주도는 생태 보전 가치가 매우 우수한 국제적 공간이며,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월동지로서 본 공항 건설로 인한 환경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국토부가 환경부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지금 제주도민들은 공항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2공항이 환경 파괴는 물론 오버 투어리즘 문제와 더불어 실제로는 공군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한다. 서귀포시 강정동의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제주는,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의 엉뚱한 격전지가 되어가고 있다. 

제주는 서울시 면적의 3배지만, 인구는 70만명으로 전체 대한민국 인구의 1.3%. 최근 몇 년간 15만명 정도가 제주로 이주했다. 관광객을 고려하면 상주 인구는 100만명쯤 될 것이다. 제주가 가라앉을 것 같다. 필리핀의 보라카이처럼 일정 기간 입도(入島) 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업무도 있지만, 저가항공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제주에 간다. 갈 때마다 달라진 풍경에 당황한다. 어딜 가나 파괴(‘건설’) 현장이다. 예전에는 해안과 도심 중심이던 건설 붐이 중산간 마을까지 확대돼 ‘빌라’가 아닌 곳이 없다. 최근 내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질 좋은 당근 생산지로 유명한 구좌지역 근처 마트에서 중국산 당근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주의 ‘가치’는 자체의 환경, 생태, 역사, 문화 등뿐 아니라 육지와의 다름에도 있다. 관광인류학의 기본이다. 나는 제주에 왜 테디 베어(곰 인형) 박물관이 있는지, 람사르습지 인근에 왜 사파리(대형 동물원)를 지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후자는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제주와 육지의 차이는 제주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주를 육지의 필요에 의해 개발하는 것, 이것이 내부 식민지다. 제주를 육지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한다면, 그것은 ‘제주 발전’이 아니라 제주의 의미를 없애는 일이다. 

이 기시감.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올 줄 알았지만 한반도는 바로 미군정의 통치에 들어갔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무려 7년 이상 지속된 제주 4·3은 ‘전쟁 이후의 전쟁’의 전형이다. 4·3은 미군과 이승만 정권뿐만 아니라 야당 지도자까지 가해자였던 사건이다. 강정동부터 제2공항까지, 말로는 제주 발전이라지만, 4·3의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제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일차적으로 제주는 자연으로서 제주다. ‘관광 제주’는 제주 주민을 위한 정체성이지, 관광객이나 정부의 정책 대상이 아니다.

‘환경’과 ‘국토’가 대립하는 사회에서 국토가 온전할 수 있을까. 제주 제2공항 반대 운동에 전국적 지원이 절실하다. 제주 훼손은 세계문화유산을 잃는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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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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