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꿈을 꾸었다. 남해의 어느 섬에서였다. 그 섬을 고향으로 둔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펜션을 운영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멀고도 낯선 섬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데 기차와 버스와 택시와 배를 갈아타고서 하루를 꼬박 바쳤다. 친구가 한번 오라고 청했다지만, 언젠가 한번 가겠노라 약속했다지만, 그렇게까지 애를 써가며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무슨 비경이니 절경이니 이름난 곳도 아니고, 기도발 좋은 암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낚시꾼들에게는 좀 알려진 모양이나 낚시엔 취미가 일절 없는 데다, 온갖 신선한 해산물이야 섬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수혜라 여겼으니, 기껏해야 고구마와 고등어가 특산물이라는 그 섬에 무슨 특별한 환상을 가졌겠는가. 그런데 그가 미끼를 던지듯 보내준 고구마는 ‘고구마가 뭐 고구마지’ 하던 생각을 접게 만들 만큼 맛있었고, 때마침 철을 맞아 제대로 기름이 오른 산 고등어를 들먹이며, 산 고등어 맛도 모르면서 무슨 음식 장사냐 도발까지 하기에, 그래 어디 그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산 고등어 맛이나 한번 봐보자, 덥석 미끼를 물었던 것이다. 나를 이끈 줄은 내 지독한 식탐이었다.

어쨌거나 섬은 섬이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일몰이 아름다운 절벽과 각종 이름을 건 바위와 몽돌 해수욕장 같은 곳을 돌아보았다. 토지매매, 펜션분양과 같은 팻말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거슬리긴 했지만, 곧 케이블카가 건설되고 일주도로도 완성될 거라는 친구의 자랑이 오히려 아쉬웠지만, 아직까지는 손때가 덜 묻은 순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날의 저녁 상차림은 기대 이상이었다. ‘고등어가 뭐 고등어겠지’하던 생각을 완전히 날려버릴 만큼 깊고 진했던 산 고등어 회는 물론이고, 생전 처음 맛본 꼴뚜기인지 오징어 새끼인지 호래기인지 아무튼지 산 것을 손가락으로 훑어 먹는 맛이며, 그 옆에 딸려 나온 온갖 해초와 해산물들의 향연까지. 내가 문 미끼가 고구마든 고등어든, 섬으로 연결된 줄이 우정이었든 약속이었든, 어쨌거나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는 섬에 딸린 어떤 무인도 얘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꽤 많은 인구가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살던 섬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고, 멧돼지들이 자유롭게 번식을 하며 사는 섬이 되어 버렸는데, 멧돼지들이 섬에서 죽지 않고 개체수를 늘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섬의 토양이 손을 대지 않아도 해를 바꿔 고구마가 맺힐 정도로 윤택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수년 전에 섬 전체에 무슨 병이 돌아 고구마 농사를 망친 적이 있었는데, 그 병이 돼지들의 섬까지 미쳤는지 어쨌는지, 어느 날 밤 돼지들이 섬을 빠져나와 본섬을 향해 헤엄쳐 오더란다. 새끼돼지들까지 줄줄이 거느리고 무리를 지어 바다를 건너오던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구경 나온 동네사람들이 한바탕 배꼽 잡고 웃으며 지켜봤다고.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돼지들이 걸핏하면 고구마 밭을 습격해 헤집어놓는 통에, 그때부터 멧돼지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돼지가 한번 왔다 가면 남아나는 게 없다고 멧돼지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 순간 나는, 나름의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바다를 건너는 멧돼지 가족의 이미지를 언젠가 소설에 꼭 써먹어야겠다는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래전에 읽은 ‘돼지의 보복’인지 ‘돼지의 보은’인지 하는 제목의 일본 소설이 생각났고, 소설의 배경이 오키나와였는지 야쿠시마였는지 헷갈리다가, 결국 돼지가 보복을 한 것인지 보은을 한 것인지 결말도 어렴풋했다. 돼지가 술집을 습격했던가, 죽은 돼지를 삶아먹고 배탈이 났던가, 돼지 때문에 화를 면했던가.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선착장 근처의 한 카페에 이르렀고, 그가 내게 고구마 밑밥을 깔고 고등어 미끼를 던지고 인연의 줄을 잡아당긴 속내를 알게 되었다. 케이블카와 일주도로가 마무리되고 나면 집값이 오르는 건 물론이고 관광객이 엄청 몰려들어올 거라는 것. 5000만원이면 그 카페건물을 살 수 있다는 것. 단순투자로도 좋겠지만 거기서 식당을 하면 아주 잘될 거라는 것. 그 북적거리는 서울에서 그 높은 임대료를 내며 식당을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것.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섬에 살면 소설도 훨씬 잘 써질 거라는 것. 그 맛있는 고등어와 호래기를 매일 먹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는 것. 이런 기회가 언제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 기회는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는 거라는 것.

그날 나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을 때, 바다를 건너는 멧돼지 꿈을 꾸었다. 멧돼지를 직접 본 적도 없는데, 쿰쿰쿰 숨소리까지 지랄 맞게 생생한 꿈이었다. 수면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죽기 살기로 헤엄쳐 오던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고 어찌나 우습던지. 꿈을 꾸면서도 돼지꿈은 좋은 거라던데 생각을 했다. 돼지가 떼로 나왔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나 히죽히죽 웃기까지 하면서. 참으로 무섭고도 슬픈 꿈이었다. 아 인간아, 인간아. 아 식탐아, 빌어먹을 식탐아. 다시 안 올 기회를 버리고 섬을 떠나면서 그제야 소설 제목이 확실히 떠올랐다. ‘돼지의 보복’이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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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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