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주문진 어시장에 갈 기회가 되면 나는 오징어를 유심히 관찰한다. 피부의 갈색이 옅어지면서 색이 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심심풀이 땅콩과 함께 오징어를 흔한 먹거리로 취급하지만 바다에서 유영하는 오징어나 문어 또는 갑오징어가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색을 바꾼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이들 두족류 동물은 어두운 바위에 앉으면 진한 갈색으로, 모래 위를 헤엄칠 때는 옅은 모래 빛으로 자신의 피부색을 바꾼다. 

2019년 3월 미국 보스턴의 노스이스턴대학 연구진은 오징어나 갑오징어가 피부 층층이 다양한 색소 주머니를 갖고 있으며 빛의 밝기에 따라 이 소기관의 크기를 변화시켜 색소의 농담(濃淡)과 패턴을 조절한다는 논문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빛을 감지한 오징어의 뇌가 신호를 보내면 색소 주머니를 둘러싼 근섬유가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일이 진행된다. 보호색을 띠는 과정에 오징어의 신경계와 세포 골격 단백질 사이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군인이나 화장품 업계 종사자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군복이나 전투기의 색을 조절하여 위장술에 사용할 수 있는지 타진해본다거나 빛에 따라 피부의 색조를 조절해보려는 것이다.

신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징어를 관찰할 때 아마도 글루탐산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나는 색소 주머니를 둘러싼 근섬유가 수축하고 이완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한때 내 연구의 주제가 혈관의 수축과 이완에 관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근육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뼈와 함께 생명체의 이동에 관여하는 골격근과 혈관 혹은 소화기관을 움직이는 평활근이 그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협심증 환자들은 급할 때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 알약을 혀 아래에 집어넣는다. 구강 점막에 녹아 약물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관상동맥 평활근 세포를 이완하여 혈관을 넓히고 혈액이 잘 흐르게 한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무기 그리고 의약품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진 흥미로운 화합물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 물질의 의약품으로서의 기능은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다이너마이트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몇 명이 자신들이 일하지 않는 주말에 협심증 증세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이 현상에 주목한 임상 의사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의약품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정작 협심증을 앓았던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약으로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무기를 약으로 쓸 수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훗날 과학사가들의 ‘펜놀림’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니트로글리세린처럼 혈관을 확장하는 물질을 우리 세포가 만든다는 점이다.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 산소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를 써서 세포 안의 효소가 만들어내는 혈관 확장 물질은 바로 일산화질소(nitric oxide)이다.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물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소 의아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세포가 만든 이 기체 화합물은 생성된 곳 근처에서 국소적으로 작용하고 빠르게 분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직면하면 세포는 이 화합물을 즉시 만들어야 한다. 혈관을 확장시켜 산소를 공급할 때 일산화질소는 산소와 협조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세포 안에서 산소와 경쟁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예는 반딧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름밤을 수놓는 아름다운 반딧불의 정체는 이들 기체 화합물 사이의 경쟁 구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개똥벌레는 세포 호흡에 사용되는 산소를 불씨 삼아 빛을 낸다. 호흡 단백질에 일산화질소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세포는 산소를 호흡 과정에 사용할 수 없다. 갈 곳 없는 산소가 반딧불 불씨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머지않아 곧 반딧불이 꺼진다. 그래서 반딧불은 깜박거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2001년 텁스대와 하버드 의대 공동연구진은 반딧불의 불빛(lantern) 자체가 호흡 단백질에 자리 잡은 일산화질소를 몰아낸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렇게 산소가 다시 호흡에 참여하면 반딧불 불씨는 가뭇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포의 호흡 단백질에 결합하는 성질을 가진 화합물이 일산화질소처럼 반딧불을 밝힐 수 있으리라 추론할 수 있다. 동물에 치명적인 독성 물질인 청산가리를 소량 처리하면 반딧불이 밝아진다. 청산가리가 세포의 호흡 단백질에 결합하기 때문이다. 연탄가스 중독 물질인 일산화탄소도 호흡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반딧불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

몇 가지 예에서 짐작하듯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일산화질소와 일산화탄소를 만드는 효소 단백질이 있다. 세균도 예외는 아니다. 일산화질소는 아르기닌 아미노산을 변형시켜 만든다. 반면 일산화탄소는 적혈구 헤모글로빈 분자에 하나씩 박혀 있는 헴 분자를 재료로 만든다. 적혈구 하나가 파괴될 때마다 약 8억개의 헴이 분해되고 그만큼의 일산화탄소 분자가 생성된다. 이 두 기체 분자 모두 인간의 몸 안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혈관을 확장하며 신경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오징어 색소 주머니를 수축하고 이완하는 과정에도 물론 참여한다.    

요즘 과학자들은 이들 기체 화합물을 의료용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한다. 세포나 조직의 호흡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켜 활성 산소의 생성을 차단하면 장기이식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와 일산화질소에 천형처럼 부여된 독성 물질이라는 오명은 최근 생겨난 것이지만 사실 이들 두 기체는 생명의 역사 초기부터 오랫동안 세포의 안녕에 공헌해 왔다. 이 두 화합물 모두 호흡이나 광합성 과정을 조절하는 아주 오래된 물질이다. 생물학에서는 오래 버텨 온 것일수록 더 중(重)하고 각별히 아름답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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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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