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의 빛과 그늘을 보여준다. 소설은 순수한 사랑을 좇다가 파멸에 이르는 개츠비의 일생을 통해 물질주의에 빠진 미국 사회를 고발한다.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소설은 지금까지 수천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청소년 필독서로 꼽힌다. 개츠비의 이름을 딴 남성화장품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개츠비스크(gatsbyesque·개츠비처럼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성향)’가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개츠비가 바다가 보이는 뉴욕의 대저택에서 날마다 호화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돈으로 빼앗긴 연인(데이지)을 되찾는 방법은 돈뿐이라는 믿음을 가진 개츠비는 끝내 파티를 통해 연인을 만난다. 대저택은 가진 자들의 공간이고 호화로운 파티는 그들의 사교문화의 단면이다. 100년 전 소설 속 얘기만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성을 높여간다. 룸살롱 술문화나 골프 접대문화도 개츠비의 호화파티와 다를 바 없다. 

자본의 힘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를 구분하고 개인의 취향까지 가른다. 때로는 사회 지배집단을 구분짓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자본을 ‘문화자본’으로 명명했다. 문화자본은 ‘구별짓기’를 통해 계급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 오늘날 상류층이 즐기는 살롱콘서트나 하우스콘서트, VIP 대상 문화강좌 등은 ‘구별짓기’의 대표적 사례다. ‘구별짓기’는 고급문화를 선도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과시 소비’로 사회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적은 비용으로 파티를 여는 ‘소박한 개츠비’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해 음식을 나누며 책을 교환하거나 영화 감상 경험을 얘기한다고 한다. 주52시간제와 ‘워라밸’ 문화 확산의 산물이다. 직업·나이·거주지 등은 묻지 않고 취향만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성 수직사회에 대한 저항도 엿보인다. 그러나 취향도 문화자본이다. ‘소박한 개츠비’ 파티가 다른 취향을 배제하는 ‘구별짓기’로 흘러서는 안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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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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