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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몸의 일기

경향 신문 2020. 3. 24. 14:28

거울을 잘 보지 않던 아이가 문득 몹시 골똘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는 날이 있다. 10대들의 교실에서 글쓰기 교사로 일하다 보면 그런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별 관심 없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아이는 이제 자의식의 축복과 저주 속에서 한층 더 복잡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내 모습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신경 쓰며,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를 수없이 느끼며 자라날 것이다. 누구도 그 변화를 늦추거나 멈출 수 없다. 

글쓰기 교사인 나는 아이가 자기 몸을 최대한 덜 미워하기를 혹은 아무래도 좋다고 느끼기를 소망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거울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자주 건네는 건 몸의 느낌에 관한 질문이다. 지난주의 키와 이번 주의 키가 다른 그들은 최근의 자기 모습과 감각을 기억하며 글을 쓴다. 

열네 살 김시후는 이렇게 썼다. ‘그림을 그리다가 화장실에 가서 불을 켰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흠칫했다. 3초 정도 멈춰 있다가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몸이 뻐근하고 뭔가 척추뼈가 지그재그로 흩어진 기분이 든다.’ 

자기 신체가 새삼스러운 건 김시후뿐만이 아니다. 열다섯 살 양휘모는 앱 카메라 속 자기 얼굴을 이렇게 증언한다. ‘어느 날 페이스북을 보다가 ‘트루 미러’라는 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의 진짜 얼굴! 아직도 모르십니까?’라고 써있길래 호기심에 바로 깔았다. 앱에 들어가니 좌우반전이 된 카메라가 켜졌고 ‘이것이 다른 사람이 보는 당신입니다’라고 써 있었다. 트루 미러 속 내 얼굴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좌우가 바뀌었을 뿐인데 훨씬 못생겼고 마치 다른 사람과 영상통화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좌우가 뒤바뀐 내 얼굴도 낯설지만 녹음해서 다시 듣는 내 목소리도 낯설기 마련이다. 열두 살의 김지온은 이렇게 썼다. ‘내 목소리가 녹음기로 들어가면 조금 이상해진다. 막막한 느낌이 든다. 녹음기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별로 듣기가 싫다. 내가 아닌 것 같다.’

한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내 몸에서 나올 때도 있다. 열세 살 기세화는 이렇게 썼다. ‘수학 시간에 다들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모두 날 쳐다보며 웃었다. 내 옆자리에 있던 지윤이가 왜 소리를 질렀냐고 물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서 그냥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기세화의 당황은 원고지에서도 역력하다. 그는 궁금하다. ‘내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질렀지?’

이들의 글을 보며 나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를 떠올린다. 한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자기 몸의 감각을 기록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문장은 신체의 성장과 노화와 고통과 쾌감에 특별히 집중하며 쓰여졌다. 소설 속에서 하루 종일 거울 속 자신을 남처럼 노려 보던 유년의 아이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넌 미친 게 아니야, 넌 네 느낌과 놀고 있는 거야. 넌 네 느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아마 끝없이 계속 물을 거다. 어른이 돼서도, 아주 늙어서까지도. 잘 기억해두렴. 우린 평생 동안 우리의 감각을 믿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단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평생 길고 긴 몸의 일기를 쓰게 된다. 쓰는 동안 그는 어색한 친구와 차차 친해지듯이 스스로에게 적응해간다. 

가장 어려운 우정은 자기 자신과의 우정일지도 모른다. 몸의 감각에 대한 글쓰기는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다니엘 페나크는 그 일기가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몸의 온갖 신호로부터 상상력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달라져 있어서 당황스러운 10대들과 함께 나는 몸의 일기를 쓴다. 때때로 몸의 일기가 마음의 일기보다 더 확실하고 부드럽게 몸과 마음을 연동시키기 때문이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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