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4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안을 부동의(不同意) 처리했다. 사업자 측이 환경영향평가 전문 기관의 재검토 의견을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뉴오션타운은 중국 자본인 신해원유한회사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주변에 총사업비 3700억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개와 캠핑장, 상업시설을 짓는 대규모 관광 사업이다(4월29일자 경향신문, “이 멋진 제주 송악산에 대규모 호텔 짓겠다고?” 기사 참조). 

2003~2006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여러 차례 단식과 시위, 도롱뇽이 원고가 된 소송을 벌였던 지율 스님의 지난한 투쟁은 환경운동사의 논쟁으로 남았다. 그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31㎏까지 내려간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리고 ‘수도자’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의 ‘비타협적’ 투쟁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송악산 기사를 보고 그의 투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통도사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천성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2001년 4월 천성산을 파헤치는 공사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충격을 받았고 환경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나는 육지 사람이지만, 송악산 근처에서 6개월을 지낸 적이 있다. 평소에도 제주에 갈 때는 ‘큰 돈(택시비)’을 들여 송악산에 꼭 간다. 올레 10코스의 일부인 산방산 아래의 산방연대(煙臺)-사계리 해안도로-송악산에 이르는 길은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 <페이스메이커>를 비롯, 각종 광고의 배경 화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너무나 아름답다. 사계리(沙溪里) 해변은, 글자 그대로, 모래사장에서 바다까지 거리가 길고 깨끗하다.

기본적으로 개발(파괴)은 인간이 자신을 자연에 포함시키지 않는, 자연에 대한 대상화이다. 나처럼 짧은 시간이나마 혹은 지율 스님처럼 늘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된 경험이 있다면, 호텔은 내 몸을 짓밟고 세워지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설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의 투쟁은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 아니다. 천성산, 내성천, 도롱뇽과 하나이기에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

모두가 뉴 노멀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개발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악산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도의회가 절차 문제로 제동을 걸었지만,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서귀포시 강정동이 미군기지 후보지로 지정되기 훨씬 전인 1988년 미국은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대체지로 송악산 군사기지를 지목했다. 일제 때나 지금이나 ‘외세’에게 제주는 중요한 곳이다. 여기에 자본이 결합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무능했다. 무지와 굴종으로 우왕좌왕하면서 자연(‘영토’)을 지키려는 주민을 탄압했다.

그간 환경영향평가와 주민투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의하지 않는 주민에게 공권력을 동원했다. 코로나19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투표 결과는 무조건 민주주의일까.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오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가치의 문제다. 오히려 공청회나 투표는 문제의 책임을 주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일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다수결이 아니었듯 환경영향평가나 주민투표와 무관하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무조건 진리인가? 전문성, 공정성, 끊임없는 뇌물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그 결과가 개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영향평가에서 승인 결정이 났다고 해서, 백록담에 호텔을 지을 것인가. 이제 개발주의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K방역’이 성공한 이유는 똑똑한 리더십과 공동체의 생사를 위해 시민들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송악산 개발은 한반도와 지구 이슈다. 주민들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처럼 글로벌 생태계 관점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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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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