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반인은 해오던 대로 안주하려 하고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것에만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의 규범을 지킬 줄만 알 뿐, 그 규범을 벗어나서 논의할 줄은 모릅니다. 하(夏)·은(殷)·주(周) 삼대는 예가 서로 달랐지만 각기 왕업을 성취했고, 다섯 제후는 법이 서로 달랐지만 각기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를 만들지만 어리석은 자는 예에 얽매이며, 훌륭한 자는 법을 바꾸지만 모자란 자는 법에 붙들립니다.” 기존 규범의 고수를 주장하는 대신들과 논쟁하며 공손앙이 한 말이다.

통용되는 규범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지금이나 2400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익숙한 규범에 따라서 잘 운영하는 편이 안전하지 혁신은 혼란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 당시 진나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감룡, 두지 등의 반대 논리였다. 오늘날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규범을 바꾸려 할 때도 비슷한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일상으로 굳어진 규범의 내부에 갇히면 그 규범을 바라볼 수도 없고, 그것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도 없다. 규범을 보려면 규범 바깥의 자리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단절은,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그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거기서 우리는 정상적인 규범으로 여겨온 것들이 과연 언제부터 그래왔고 영원히 그럴 것인지 묻게 된다. ‘넥스트 노멀’이라는 신생 어휘를 빌리지 않더라도, 이 팬데믹을 이겨내면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회와 경제의 구조로부터 교육의 형식과 내용, 여가생활과 술자리 문화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해 왔는지, 꼭 그러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시간이다.

생존 자체가 걸린 엄혹한 현실에서 성찰이라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성찰인지 모른다. 공손앙의 말을 받아들인 효공은 진(秦)나라를 혁신하여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다. 공손앙 자신은 상군의 지위에 올랐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진나라가 훗날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혁신 덕분이다. 그 혁신은 ‘완벽한 옛 법’으로 여겨진 규범이 ‘그 시대에 통용된 법’일 뿐임을 보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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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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