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본 음식점에서는 생간(生肝)을 먹을 수 없다. 비행기 갈아타느라 나리타 공항에서 맥주 한 병 마신 시간이 일본 체류의 전부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겠지만 사실 저 말을 한 사람은 일본인 친구다. 공동 연구차 한국에 잠시 머무르는 그를 신촌 뒷골목에서 만났다. 허름한 음식점에 앉자마자 곁들이로 나온 처녑과 생간을 보고 화색이 돌던 그 친구에게 나는 그것을 아예 한 접시 주문해 주었다. 그는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간은 붉다. 실험동물 내부에서 붉은색을 띠는 기관은 네 곳이다. 심장, 콩팥, 지라 그리고 간이다. 모두 혈액이 몰리는 기관들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간다. 심장은 피를 공급하는 펌프이고 지라는 120일 수명을 다한 적혈구가 분해되는 장소이다. 혈액 속의 질소 노폐물을 제거하고 염류의 균형을 도모하는 콩팥도, 혈장 단백질인 알부민을 만드는 간도 혈액의 세례를 듬뿍 받는 곳이다. 혈액이 닿지 않는 기관이 어디 있으랴만 그 양은 다소 차이가 있어서 폐는 분홍빛을 띠고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은 누르스름하다.

우리는 길거리에서도 쉽게 간의 해부학을 공부할 수 있다. 순대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내장을 섞어 달라고 하면 대개 간과 폐 일부를 숭덩숭덩 썰어 준다. 입으로 가져가기 전 간의 모습을 눈여겨본 적이 있는가? 간 절편에서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모습을 아마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두 개는 혈액이 간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고 나머지 하나는 간에서 만든 담즙산이 나오는 담관이다. 혈액이 들어가는 주된 통로가 두 개인 기관은 간이 유일하다. 심장에서 콩팥 혹은 지라에 들어가는 혈액의 주된 통로는 모두 한 개다.

심장을 떠난 혈액은 신선한 공기를 전신에 운반하는 동시에 각종 기관이 배출한 노폐물을 싣고 심장으로 되돌아온다.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들숨 부피의 약 5분의 1인 산소만을 호흡에 사용한다. 공기 중의 산소 기체를 포획하는 일이 자신의 소임인 적혈구는 들숨의 나머지 5분의 4에 해당하는 질소를 뺀 산소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산소와 강하게 결합하는 헤모글로빈 덕택에 적혈구는 이런 신비로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작 적혈구 자체는 산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산소를 사용하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적혈구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6할 이상이 적혈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의 산소 경제 효율은 썩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산소 외에도 흡수한 영양소 공급을 담당하는 우리 순환계는 심장에서 시작해 동맥, 세동맥, 모세혈관으로 가지를 치다가 다시 역순으로 모세혈관, 세정맥, 정맥을 거쳐 심장으로 들어오는 기본 설계를 고수한다. 콩팥도 장딴지 근육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우리 소화기관도 마찬가지다. 위나 소장에 뻗은 혈관은 소화와 흡수 과정을 거친 나노 크기의 영양소를 우리 몸 안으로 끌어들인다.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혹은 지방산이 대표적인 물질이다. 이들 물질을 몸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기관이 명실상부한 우리의 몸 ‘밖’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위와 소장은 입을 통과한 음식물을 한 개의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크기로 잘게 부순다. 그렇지 않으면 영양소가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한 영양소는 여전히 몸 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장 상피 세포막을 통과해 모세혈관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이들 나노 크기의 영양소가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소화기관에서 출발한 혈관이 바로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먼저 간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짐작하다시피 간은 관문으로서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이 안전한지 검증하는 일종의 ‘입국 심사’를 폭넓게 진행한다.

소화기관을 떠난 혈액이 간으로 향하는 혈관계는 ‘간문맥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소화기 혈관은 간문맥을 통과한 뒤 간이라는 거대한 ‘모세혈관 덩어리’를 한 번 더 거쳐야만 비로소 심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렇듯 간에는 심장에서 온 간동맥과 소화관에서 출발한 간문맥, 두 곳의 혈액이 몰려든다. 산소와 영양소를 머금은 피가 합쳐지는 것이다. 간세포 사이사이에 촘촘히 자리한 모세혈관을 갖춘 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독성 물질과 세균을 제거한다. 독성 물질의 대사는 간세포가 담당하고 세균은 모세혈관에 상주하는 면역세포가 처리한다. 대장에 뻗은 혈관도 심장에 가기 전 간을 거친다. 영양소 흡수는 대부분 소장에서 이루어지지만 대장을 통해서도 10% 정도의 영양소가 흡수된다. 대장에 거주하는 세균들이 소장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식이섬유를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장이나 췌장 및 지라를 거쳐 온 혈액도 대부분 간을 지나 심장으로 간다. 간문맥계는 먹장어처럼 턱이 없는 원시 동물에서부터 가오리나 새 및 인간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기능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모든 유기체는 소화기관을 통과하는 음식물에서 최대 효율로 영양소를 추출하려 한다. 식도 아래에서 대장의 끝까지 진 음식, 마른 음식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소장은 축구장만 한 넓이를 흡수 공간으로 쓰고 있으며 간문맥은 커다란 투망을 펼친 것처럼 8~9m에 이르는 소화기관의 거의 전부를 망라한다.

먹고살기의 곤궁했던 역사는 우리 몸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소화기관을 거의 통째로 어우르는 간문맥의 저 유장함도 마찬가지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ghimh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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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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