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묵힌 산밭을 갈아엎고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심자 곧바로 하늘에서 단비 대령. 하느님과 합작 농사.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이웃들 농사는 대기업(?) 수준이랄까. 흉내는 물론이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고난도 기술 보유자들, 게다가 넓은 경작지. 여기서 나만의 틈새 농법은, 하늘에 매달리는 기도뿐이다. 월마트 건물 한쪽에 구멍가게를 낸 사람이 하도 장사가 안되자 현수막을 하나 달았는데 그날로 대박이 났단다. “출입구. 이쪽입니다.” 인생마다 ‘출입구’라고 현수막을 매달면 복이 요쪽으로 쏠쏠 들어올까. 하늘이 도와주면 조무래기라도 킹왕짱 인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이렷다. 

요샌 “포도시 밥 묵고 살아라우” 말하는 분들이 많다. 포도시란 간신히, 쥐오줌만 한 물로 모내기를 하듯 팍팍한 살림살이. 어렵다고 들어앉아서 염불만 외면 더 어려워진다고 스님이 그러시더구먼. 탁발을 해야 쌀이 생기냐 했더니 그 정도로 어려우면 매력이 일도 없는 스님이니만큼 환속해야지, 말끝에 우린 웃었다. ‘포도시’라도 살길은 열리게 되어 있지. 언젠가 할머니 한 분이 기도를 해달라고 해서 “무슨 기도요?” 했더니 병원에 가봐싸도 당최 무르팍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킹왕짱 가마 타고 다니실 분인데, 늦게 태어나서 고생하신다고 그랬더니 흐흐 부끄럽게 웃으신다. 같은 말도 기분을 뭣같이 만드는 수가 있다. 가령 ‘인자 죽을 때가 안 되얏소?’라든가, ‘그라코롬 아프다가 죽는 거시재라이’라든가, ‘딸네들 뒀다가 뭐할라고 그라시요. 얼른 와보라 하쇼’라든가. 소가지 없는 소리로 염장을 지르는 치들이 있다. 

포도시 살지만, 기분 좋은 날은 킹왕짱이 된다. 역병으로 마스크 쓰고 살지만 미소는 잃지 말자. 찡그리고 기분 나쁜 날이 많으면 저만 손해지. 그걸 밖으로 꺼내 주변까지 울상을 오염시킨다. 낮엔 출입구처럼 입 벌리고 해시시 웃으며 살고, 밤엔 입 벌리고 웃고 자야 공기도 더 들이마실 수 있다. 당신 날마다 기분 좋기를. 그분이 좋고 이분도 좋고, 아! 그러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은 날.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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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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