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에 관한 기사가 폭주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혐의가 확실한’ 윤 당선인과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고, 범진보 세력은 “보수의 준동”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대립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이다. 여당은 “마녀사냥, 윤씨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말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야당과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타깃’이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주장은 “정대협 비판은 일본 우익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번 사안은 철저히 진보 진영 ‘내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다. 

한편 여당과 어쩌면 정의연 지도부까지도,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 사안을 윤 당선인 개인의 비리로 축소하여 자신들과 선을 긋고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피해자와 희생양은 다른 개념이지만, 둘 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동원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역할’은 같다. 여야 모두 이번 사태를 ‘개인의 돈 문제’로 국한하려는 이유다. 거듭 말하건대, 젠더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한·일관계의 모순이 집약된 군 위안부 운동의 난제는, “회계 부실”이 아니다. 돈 문제는 드러나기 쉽다. 이번 사태에서 ‘돈’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황을 집약한 말이, “터질 것이 터졌다”이다. 지난 월요일 이용수님의 2차 기자회견 내용대로 ‘돈’ 문제는 검찰이 맡으면 된다. 

1990년대 초반, 열악했던 활동 시기를 거쳐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까지 군 위안부 운동은 피해 당사자, 여성운동가의 노력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의제화한 모범국이었고,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쌍방 간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불가역적 합의’ 이후부터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와 더불어 전후 피해에 대한 한국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식민지 희생자인 ‘군 위안부’의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하고 국가의 자존감을 찾자는 의식이 고양되었다. 일명, 젊은 보수 ‘태극기 세대’의 부대가 등장했고, 한편에서는 반일을 넘어 극일을 하자는 쿨한 신민족주의자들이 진보를 자처했다. 이러한 기류는 대중화된 군 위안부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안부 소재 영화의 선택적 흥행, 전국적인 소녀상 건립 운동 등이 그것이다. 소녀상 건립과 지킴이 운동에는 입시 스펙을 쌓으려는 학생, 학부모도 동참했다. 

군 위안부 의제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지만, 정작 정부는 이 사안을 자신의 의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는 비정부기구(NGO)가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많은 NGO들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탄압을 받아가며 대신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군 위안부 운동의 국제화, 일본 진보 세력과의 네트워크, 할머니들의 생계와 복지, 장례까지 이 문제를 도맡아온 정대협의 위상은 높아졌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남성이 다루어야 할 큰 정치’로 이동하면 돈과 사람, 자원이 모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전에는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각 분야의 남성 연구자들이 몰려들었고 ‘자리’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으로서 군 위안부 운동의 변질은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겠다. 

앞서 말한 대로 돈 문제는 검경이, 비리 보도는 언론이 할 일이다. 다만, 나는 정대협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훌륭한 할머니’와 ‘그렇지 않은 할머니’로 구분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분들의 생애가 가슴 아프다. 

운동 초기와는 달리, ‘대중화’ 이후 군 위안부 운동은 후퇴했다. 그 결정적 장면은 윤 당선인의 선거 포스터 구호 “총선은 한·일전이다”처럼, 국가주의 프레임을 여성운동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용수님의 핵심적 문제제기라 생각한다. 이번 일이 단순 횡령 사건을 넘어, 피해자가 진영의 필요에 따라 희생양이나 ‘간판’이 되는 사회운동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이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