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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당나라 때 문장가 유종원은 <참곡궤문(斬曲궤文)>이라는 글을 남겼다. 궤(궤)는 앉아 있을 때 몸을 기대는 가구인데, 굽은 나무로 만든 궤를 보고 칼로 베어버렸다는 내용이다. 굽은 것을 늘 곁에 두다 보면 간교한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 과감하게 없애버림으로써 곧음을 지향하는 뜻을 표한 것이다. 곧음을 군자에, 굽음을 소인에 빗대 온 오랜 전통 위에서, 늘 왕 곁에 붙어 아첨을 일삼는 환관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비유로 쓴 글이다.

19세기 조선의 사상가 심대윤은 유종원의 이 글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자연 만물에는 생김새가 곧은 것도 굽은 것도 있기 마련이고, 활이나 바퀴, 갈고리처럼 굽어야 유용한 도구들도 있다. 곧아야 할 것을 왜곡해서는 물론 안 될 일이지만, 곧은 것과 굽은 것은 각각의 용처가 있으니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심대윤의 기준은 공리에 비추어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있다. 곧더라도 해로우면 버려야 하고 굽었더라도 이로우면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심대윤 역시 군자는 곧고 소인은 굽었다는 명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내면의 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지, 외형과 이름을 지닌 실제에서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다. 진정한 군자라면 때에 맞게 굽음을 사용할 줄도 아는 법이고, 수가 높은 소인은 굽음을 감추고 곧음으로 가장하는 데에 능하기 때문이다. 굽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인은 경계할 가치조차 없다. 겉으로는 곧아서 세상에 잘 팔리지만 팔리고 나서 남모르게 굽은 본성을 발휘하는 이들이 문제다. 사람의 곧은 면만 보고 썼다가 결국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일들은 곧음의 이름을 내걸고 이루어진다. <주역>에서부터 강조된 곧음은 내면을 끊임없이 다잡는 기준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을 향한 성찰이 아니라 명분을 포장하고 남을 정죄하는 데에만 사용될 때, 본질과 동떨어진 사달이 일어나기 쉽다. 심대윤은 말한다. 자기 마음에 경계와 기준을 미리 정해두지 말고 오직 일의 실정에 따라 하나하나 분별하라. 외형과 이름에 현혹되지 않아야 곧음의 실질을 얻을 수 있고 굽음의 유용성도 잃지 않을 수 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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