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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경향의 눈]

경향 신문 2020. 6. 25. 14:13

‘펜들턴앤드선’은 영국 런던 북서쪽 동네에 있는 작은 정육점이다. 펜들턴 부자(父子)가 1996년에 개업했다. 동네 단골이 많아 한동안 장사가 쏠쏠했는데 2014년에 위기를 맞았다. 같은 골목 끝자락의 지역 도서관이 나가고 그 자리에 슈퍼마켓 체인점이 들어섰다. 손님이 우수수 빠졌다. 아버지 톰이 부랴부랴 고기값 할인 판매에 나섰지만 실패. 수입이 더 떨어졌다. 이때 아들 애런이 돌파구를 찾았다. 빅데이터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가게 통창과 진열장에 센서 몇 개를 달았다.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지, 그중 얼마나 광고판을 보고 멈춰서는지, 또 얼마나 가게 안으로 들어와 진열장을 살펴보는지 등이 데이터로 수집됐다. 이를 토대로 시간대별 판촉 전략을 짜고, 진열장 고기 배치와 광고판 문구를 눈길 더 끌게 바꿨더니 손님들이 돌아왔다. 빅데이터가 변두리 정육점도 손쉽게 활용할 만큼 일상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알려준다.

지금 우리는 데이터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호모 데이터쿠스’라 하겠다. 출근길 버스·지하철을 타면 출발·하차 지점이 교통카드에 데이터로 기록된다. 승용차 내비게이션에 따라 움직인 동선도 실시간 데이터다. 점심 먹고 카드를 내면 결제 시간·금액과 가맹점 코드가 데이터로 생성된다. 은행 입출금이나 주식 거래 때도 마찬가지다. 병원이나 마트에 들렀다면 진료·처방 내역과 구매 내역도 데이터다. 온라인 쇼핑은 물론이다.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통화·문자·SNS 메시지 내역도 빅데이터로 쌓인다. 사방팔방에 있는 CCTV는 24시간 데이터를 모은다. 출생·전출입·입출국·세금·부동산 등 일생의 데이터는 정부·공공기관이 보관하고 있다. 개인이 끊임없이 데이터를 생성하면 누군가 수집하고 어딘가에 보관된다. 그게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는 센서·스마트폰·인터넷·컴퓨터 기술이 지난 30년 새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특징은 ‘3V’라고 한다. 양(Volume)·속도(Velocity)·다양성(Variety)이다. 아무리 용량이 커도 저장하고, 빠른 속도로 전수 분석하고, 숫자·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영상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데이터를 생성하는 인간이자 삶이 데이터인 인간, ‘호모 데이터쿠스’는 코로나19 시대 들어 더욱 부각됐다. 초기 위기대응과 K방역 과정에서 데이터가 중차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확진자 위치정보를 토대로 동선을 파악해 신속한 추적·검사·치료에 나서며 지역 감염 확산을 방지한 것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노래방·클럽 등 입장 때 개인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는 것은 일상이 됐다. 코로나 지도, 마스크 앱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의료·교육·유통 분야의 비대면 서비스가 강화된 점도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

빅데이터는 분석을 통해 현재 상황 파악과 원인 진단뿐 아니라 미래 예측과 대처방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그런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러면 어찌 해야 할지까지 알려준다는 얘기다. 유튜브나 온라인 쇼핑몰의 ‘맞춤형 추천’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내가 무엇을 관심 있게 봤는지, 앞으로 어떨지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클릭할 만한 물건을 눈앞에 대령한다. 아마존은 심지어 ‘예측 배송’까지 해버린다.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시라”는 안내문과 함께.

빅데이터는 필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부른다. 둘은 양날의 검이다. 방역이라는 공익을 앞세워 개인정보를 선뜻 내주기도 하지만, 민감하고 불필요한 정보까지 무차별 노출되거나 유포될지 불안한 게 사실이다. 개인정보 오·남용과 불법 거래는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취업포털사 리쿠나비가 취업준비생들의 합격 후 입사포기 가능성을 지표화한 개인정보를 38개 회사에 연간 5000만원씩 받고 팔아넘겨 물의를 빚었다.

개인정보가 넘치는 빅데이터 시대에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편리함만 좇다가 무심결에 개인정보를 흘리는 건 나를 빼앗기는 일이다. 새어 나간 줄도 모르고 있는 게 가장 큰 위험이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정부·공공기관·기업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데이터에 대한 공평한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 용도를 마친 데이터는 즉각 파기해야 한다. 그들이 신뢰를 얻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에 ‘호모 데이터쿠스’의 목숨이 달려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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