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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플랫폼노동과 알고리즘

경향 신문 2020. 6. 25. 14:19

“강남구 1시까지 2000원 할증! 주문량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오전 11시39분에 ‘쿠팡이츠배달파트너’라는 아이디가 나에게 보내온 카톡 내용이다. 작업물량이 많을 때 가산수당을 줘가며 잔업, 특근을 시키고 물량이 없을 때는 최저임금으로 돌리던 저임금 노동시장이, 시간별로 건당수수료를 달리 주는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플랫폼은 실시간 주문량과 접속한 라이더의 수를 파악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에 따라 배달료를 조정, 노동력 공급을 조절한다. 2000원을 추가로 주면 접속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어느 정도의 라이더가 있어야 배달을 소화할 수 있을지를 디지털세계에서 무궁무진하게 실험할 수 있다. 

실험의 부작용은 노동자가 감당한다. 막상 접속을 했더니 일감이 없을 수도 있고, 강남이 단가가 좋아 이동했더니 프로모션이 종료될 수도 있다. 플랫폼은 풍부한 대기인력을 로그인시키고, 많은 라이더들이 보다 빠르게 손님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부가적 이득도 얻는다.

30분 배달제는 오히려 인간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배달대행산업은 건당으로 배달료를 지급하기 때문에, 라이더들이 알아서 빠르게 달리고 책임도 라이더가 지고 욕도 라이더가 먹는다. 혁신도 일어난다. 라이더만 아는 골목길을 이용해 빠르게 배달하거나, 차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배달하거나, 신호를 위반해 알고리즘이 예측한 배달시간보다 빨리 배달하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배달안내시간도 줄일 수 있다. 노동자가 창조해낸 시간은 디지털의 시간으로 저장되고 노동자를 다시 통제한다. 현재 배달시장에서 통용되는 배달시간은 음식점까지 15분 내 도착, 손님 집까지 20분 내 배달이다. 데이터 축적이 계속되고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통제가 본격화되면, 악덕사장들의 시간제한 규칙은 무너지고 상황에 따라 계산된 디지털의 시간이 안내될 것이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번쩍배송, 치타배송 같은 비인간적 시간전쟁이 벌어진다.

배달시간 제한만으로는 디지털세계의 자유로운 노동자를 통제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게 평점시스템이다. 쿠팡이츠는 알고리즘이 배정한 배달을 라이더들이 수락하지 않으면 평점을 깎는다. 라이더는 배차된 배달을 수락하기 전까지는 배달주소지를 알 수 없는데, 수락 후 확인한 배달지가 맘에 들지 않아 거절하면 역시 평점이 깎인다. 손님이 주는 따봉과 역따봉은 알고리즘보다 예측하기 힘들다. 방금 다녀온 손님 앞에서 웃지 않아서일까? 배달안내시간은 20분이지만 10분 안에 배달해야 했을까? 온갖 상상이 오간다. 역따봉을 받거나 평점이 낮으면 기분만 나쁜 게 아니라 콜 배차를 제한당할 수 있다. 라이더들에게 평점은 생존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자가 탄생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알고리즘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알고리즘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유독 나한테만 콜을 내리지 않는 것인지, 음식점까지의 거리만 4㎞, 5㎞인 똥콜만 배차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알고리즘을 의심해 배달수락을 계속 거부하면 신의 심판을 받는데, 1주일 계정정지나 라이더들이 영정 박혔다고 부르는 영구정지를 당한다.

플랫폼노동이 유행하면서, 정치인이나 교수가 한마디씩 얹으며 법안도 발의하고 정책도 제안한다. 개중에는 플랫폼은 중립적이고, 알고리즘은 공정하다 믿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노사대립과 노동의 문제도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플랫폼자본과 시장은 중립적이지 않다. 대기업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횡포를 부리듯, 디지털을 장악한 플랫폼은 시장의 규칙을 문자 한 통과 쿠폰 하나로 간단히 지배한다. 자본주의 탄생 이후, 자본과 노동이 함께 만들어낸 이윤을 두고 투쟁이 벌어진 것처럼, 노동자와 플랫폼이 함께 만든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둘러싼 투쟁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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