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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정동칼럼]‘권고 이행’ 권고

경향 신문 2020. 6. 29. 10:50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인권존중을 위한 수사제도·관행 개선 위원회, 검찰정책자문위원회, 검찰개혁심의위원회, 검찰미래발전위원회, 검찰개혁위원회, 검찰미래위원회, 검찰인권위원회.

제가 검사로 임관한 2001년 이후 전문가들로부터 검찰개혁 방안 등 각종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대검에서 발족시킨 위원회들입니다. 대검에 제도개선을 업무로 하는 정책기획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미래기획단, 형사정책단을 설치하였고, 그래도 부족하여 ‘개혁’ ‘미래’ ‘인권’을 내세운 위원회들을 부지런히 만들었네요.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법무부 역시 검찰운영 개선을 업무로 하는 검찰과에 더하여 정책기획단, 제도개선기획단을 만들었고, 관련 법령 개선방안 등을 심의하는 법무자문위원회가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추가로 발족시켜 각종 권고사항에 대한 보도자료를 쏟아내는 등 법무부 역시 쉼 없이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는 듯한데,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지부진한 검찰개혁을 추궁받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이명박 정부 시절 법무부에서 근무할 때, 선배로부터 어이없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법무자문위원회였는지, 정책위원회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위원으로 위촉할 만한 자기 의견이 없는 무색무취한 여성 명망가를 알아봐달라던가. 시절이 몹시 수상한 때의 법무부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봐서는 안 될 위원회의 실체를, 위원회를 내세워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는 검사들의 본심을 본 듯한 낭패감에 당혹스럽더군요. 그 후 법무부와 대검에서 각종 위원회를 만들 때마다 위원 명단을 살펴보곤 하는데, 친검찰 인사로 안배한 위원들이 누구인지 대개 짐작되더군요.

2017년 8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발족 뉴스를 접하고 다른 위원회 때와는 달리 기쁘다 못해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법무부 검찰국·과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정책기획과장 등 검찰개혁을 뒷받침할 인사를 지켜보며 슬퍼하던 차, 비판적 시각이 살아있는 분들이 위원회에 대거 합류하는 걸 보니 망망대해에 뜬 검찰개혁호에서 잃어버린 나침반을 찾은 듯했으니까요.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는 것과 실제 나아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 나아갈 방향부터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 위원 인선에 안도하며 속도 있는 검찰개혁을 간절히 소망했지요.

이의제기권 절차규정을 마련하라는 위원회 권고에 이의제기권을 무력화시키는 비공개 예규를 만든 후 예규명만 공개하며 개혁 성과로 홍보하는 등 검찰의 저항과 태업이 노골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과거사 반성, 공수처 설치 등 위원회 권고에 따른 진척이 적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검찰 인사 참사에도 이만큼의 성과는 기적이라 할 만하지요. 검찰 구성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도하고 감사합니다.

조국 장관 사퇴로 검찰 출신 차관 직무대행체제로 전환된 2019년 10월 이후, 예상대로 위원회 권고가 검찰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검찰 인사, 사건 배당 등 검찰 부조리의 핵심에 다가서는 권고들이 쏟아졌지만,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한명숙 사건 위증교사 관련 진정서 배당 논란을 보며, 배당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온 국민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찰본부장이 이의제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며,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의제기권 절차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버티는 대검과 그런 대검을 방치하는 법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높았습니다. 잊혀져가는 권고들을 안타깝게 떠올린 사람들이 한둘이겠습니까.

환자인 검찰이 허락하는 부분이 아니라 고쳐야 할 부분을 고쳐야 진정한 검찰개혁입니다. 나아갈 방향을 알고도 기득권 저항에 주춤하며 나아가지 않는다면, 개혁의지가 없는 것이겠지요. 법무부와 대검은 검찰 인사, 사건 배당과 같이 쟁점 많은 권고는 물론 익명게시판 설치, 평검사·수사관회의 활동 보장, 이의제기권 절차규정 개정과 같이 비교적 용이한 권고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쉬운 권고조차 이행하지 않으면서 힘겨운 검찰개혁을 어찌 밀고 갈 수 있을까요. 법무부와 대검이 개혁의지를 의심하고 추궁하는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까. 한나라 효무제가 치란(治亂)에 대해 묻자, 신공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힘써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했습니다.

법무부와 대검에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 이행을 권고합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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