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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격정만을 이야기하고 혁명의 서정을 말하지 않는 것은 편향이다.” 29년 전 처음 읽었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발견했다. 다이허우잉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에 나오는 저우언라이의 말이다. 편향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 탓일 테다. 책은 오롯이 29년 전의 ‘그날들’로 데려다주었다.

1991년, 복학 후 전망 부재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해 4월 도서관을 박차고 나와 거리로 나섰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명지대생 강경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사나흘이 멀다 하고 분신과 투신이 이어졌다. 언론에선 ‘분신 정국’이라 불렀고, 시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했다. 노태우 정권은 더욱 적나라하게 폭력의 마각을 드러냈다.

5월25일 대한극장 앞,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쫓긴 일군의 시위대가 좁은 골목으로 몰렸고 차례로 쓰러졌다. 쓰러진 시위대를 밟고 올라선 백골단이 방패로 내리찍으며 최루가스를 뿌려댔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폭력의 회오리가 훑고 지나간 현장에는 깨진 안경과 널브러진 신발이 무덤과 같은 봉우리를 이루었다.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떨고 있었다. 떨면서 울었고, 울면서 떨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깨진 안경은 포기했지만 신발은 반드시 찾아야 했다. 자취방 친구의 신발을 빌려 신었었다. “여러분, 백병원으로 갑시다. 사람이 죽었어요.” 애절한 목소리가 골목을 휘감았다. 나무판 위에 실려 갔던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 뒤로도 며칠 동안 유령처럼 도심 골목을 떠돌았고, 밤이면 김귀정 열사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백병원 근처를 배회했다.

외대에서 정원식 총리가 밀가루를 뒤집어쓴 뒤 시위 열기가 한풀 꺾였다. 급격한 수세 국면에 당황하며 서총련 ‘비트’에 숨어들었다. 현장 증언자로 김귀정 열사 살인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작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밤이면 삭발한 수배자들이 모여들었다. 소설가 윤정모는 수시로 음식을 공수해줬고, 작가 서해성의 입담에 홀려 밤을 지새우곤 했다.

여름이 다 되어서야 학교로 돌아왔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도심의 골목을 떠돌았다. 취업준비든 뭐든 해보려면 영어공부가 시급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댈 뿐이었다. <사람아 아, 사람아!>(신영복 옮김, 다섯수레 펴냄)를 그때 읽었다.

1957년 허징후는 C대학 당위원회 서기 씨리에의 행태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뒤 반혁명분자로 몰려 쫓겨난다. ‘백가쟁명 운동’의 출발이자 문화대혁명의 전조다. 오랜 기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허징후는 여전히 치열한 문제의식의 소유자다. 그가 사랑했던 쑨위에는 사랑 대신 편의와 도피를 택했던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무한 삶을 산다. 쉬허엉종은 여전히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부유한다. 사랑을 저버리고 영욕의 현실을 맞닥뜨린 자오젼후안의 불행은 자업자득이다. 작가는 역사의 격동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특정인의 시각에 의존하는 대신 등장인물 각자가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회한을 술회하는 방식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누군가는 깊어지고 누군가는 단단해진다. 누군가는 낙오하며 누군가는 비열해진다. 특히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사람들의 가슴에는 커다란 바람구멍이 나 있게 마련이다. ‘지금, 여기’의 우리는 서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편향을 넘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래디컬하되 익스트림하지 않게’를 외치던 그때 그 시절이 되레 그립다. 극단의 현실에서 서정을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 가슴에 난 바람구멍을 메워줄 서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최준영 |‘책고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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