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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

대롱대롱

경향 신문 2020. 7. 2. 10:40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어 나이를 잘 모르겠다. 훌쩍 자라버리면 다 동갑내기 같아. 집 울타리 안에 대밭이 있는데, 죽순 삶아 죽순된장국 끓여 먹고, 살아남은 죽순은 햇대로 솟구쳤다. 일본에서 경쟁률이 가장 센 대학은 ‘와~세다 대학’, 우리나라는 그냥 이 산허리가 통째 대밭이요, 대학이지. 대울타리 대캠퍼스. 가방끈이 짧으면 대밭에 머물면 된다.

장맛비가 거칠자 대들이 물기를 머금고 살짝 휜다. 댓잎 끝에는 빗물이 대롱대롱. 청개구리가 달라붙어 마리아 칼라스처럼 노래를 부른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비가 그치니 나비도 보인다. 배추농사 짓는 집 자식들은 배추 한 포기 두 포기 그런데 인생도 포기. 반면에 대밭을 가진 집안은 대발로 세는데, 조기에 인생대학. 나비처럼 훨훨 잘나가. 대밭처럼 자식들도 늘어 울창한 대가족. 대롱대롱 매달린 후손들로 신수가 확 폈다.

대소쿠리가 하나 있는데 상추를 따러 밭에 갈 때 쓴다. 흔한 게 플라스틱 제품들. 하지만 어머니가 쓰셨던 대소쿠리를 버리지 않고 두었어. 어머니도 밭에 나갈 때 이 대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걸으셨지. 대소쿠리를 뒤집어 놓으면 꼭 두꺼비 같아. 대밭에 두꺼비가 종종 보인다. 대소쿠리 둔갑술인가. “비 오는 날 두꺼비 한 마리 아픈 엄마 약 지으러 헐레 벌레 간다” 권정생 아저씨의 ‘두꺼비’라는 동시. 그분 동시집 <산비둘기>를 읽다가 엄마 생각을 했다. “찌이 찌이 찌이…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종일토록 부르며 찾아다니는 새야. 엄마 새야. 노을이 사라지는 서쪽 하늘이 어두워진다.” 엄마에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자랐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서쪽 하늘 어두워라. 엄마가 보고 싶은 개구리들이 엄마 엄마아~ 목청껏 운다. 새들도 엄마 찾으며 밤새도록 애타게 운다. 엄마를 잃고도, 사람만 금방 잊어버리고 살더라. 바보 같은 나는, 엄마 생각하면 눈물이 대롱대롱. 나잇값도 못하고서 에구구 이게 뭐람.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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