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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모글리가 주인공인 <정글북>을 쓴 러디어드 키플링은 제국주의자다. 대표작인 <킴>에 등장하는 인도 사람들은 유럽인들과 다른 열등한 종족일 뿐이다. ‘백인의 부담(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에서 그는 “반쯤은 사악하고 반쯤은 어린애 같은” 식민지 사람들을 정복하고 교화하는 백인들을 찬양하고 있다(이 시는 필리핀의 독립운동을 탄압한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얻어서 쓴 것인데 당시 필리핀인 25만명이 살해당했다). 키플링은 1907년 영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한술 더 뜬다. 무인도에 표류해서 28년간 살면서 그곳을 개척하고 원주민을 잡아 하인을 삼는 주인공은 사실 영국 제국주의 그 자체의 상징이다. 대영제국을 꿈꾸던 당대의 독자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지사. 이 책은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지금이라면 이런 생각을 가진 작가가 문학상을 받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로빈슨 크루소>나 키플링의 작품들을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책은 출간되는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들의 해석에 맡겨진다. <킴>이나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면서 그 바탕에 깔린 제국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면 훌륭한 독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악은 존재한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디포나 키플링의 책에서 얻어야 할 것은 과거에 만연했던 잘못에 대한 인식이다.

학창 시절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불평등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는 주장을 정교한 논리와 다양한 사례로 설명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각선미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마를렌 디트리히가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주먹질을 잘할 뿐인 무하마드 알리가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켜서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이익이 되는지 정말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프리드먼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서 반박할 근거를 찾다보면 스스로 사고가 깊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부딪히게 될 가장 큰 도전이 기후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큰 자극을 받은 책은 역설적으로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공포의 제국>이었다. 그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과장되었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풍부한 자료와 함께 제시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문제를 놓고 그와 토론 프로그램에서 논박을 한다면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기후위기에 관한 자료들을 더 찾아 읽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최근 미국의 인종차별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HBO 맥스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서비스 리스트에서 삭제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남북전쟁 이전 남부 상류사회에 대한 향수 및 노예 해방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담아 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사람들이 노예제도와 같은 엄청난 부조리에 대해 얼마나 둔감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는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나는 ‘조국백서’가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조국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청년들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렇게 청년층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한탄하다가 막상 수많은 젊은이의 시선이 집중되고 우리 사회가 공정과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을 때 우리는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기괴한 주장이 난무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백서로 내겠다고 약속했다. 집필을 맡을 분들은 ‘조국백서 저자’로 소개되었다. 출간되지도 않은 책의 저자로 불리는 것은 난생처음 보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이 나오길 고대했다. 주장의 내용을 알면 비판과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 약속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연기했다는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그렇게 부르짖는 분들이 왜 모든 문제를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입을 다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대응해야 하는 문제들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친일파’와 ‘토착왜구’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약속대로 백서를 내기 바란다. 그것은 소위 조국사태로 좌절하고 상처 입은 청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누가 아는가. 책을 읽고 나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 변할지. 조국백서 저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건필!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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