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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정거장. 손님들이 오길 기다리는 운전기사를 향해 할머니가 다그쳤다. “더워 죽겄는디 휭하니 기냥 갑시다. 이눔의 똥차 에어컨도 잘 안되고만.” 그러자 기사 왈 “똥이 다 차면 갈랍니다.” 부릉부릉 방귀소리. 장마전선은 오락가락. 나는 버스가 떠나는 꽁무니를 카메라에 몇 컷 담아두었다. 장 모르와 존 버거는 35년 동안 우정을 나눴는데, 집들을 오가면서 서로를 인터뷰하고 존중하며 아꼈다. 장 모르는 사진작가답게 필름으로, 존 버거는 목탄화와 글로….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가며 나눈 둘의 이야기는 추운 날 담요처럼 따뜻하더라. 존 버거는 사진가 장 모르가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나길 즐기는 사람이라 생텍쥐페리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려 깊고도 특별한 여행가로서, 이웃들을 사랑했고 장기여행을 즐겼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내가 살던 알프스 산촌의 집집마다 다들 장 모르의 사진이 걸려 있다. 벽난로 위에 액자를 해둔 집도 있고, 보물단지 같은 상자 속에 보관해둔 집들도 있다. 이 사진들은 보통 결혼식이나 마을축제, 춤판을 담은 것들. 내 친구라고 하자 마음을 열고 부탁들을 한 거다. 산골 사람들은 카메라를 든 사람을 간첩이나 군인으로 알고 멀리하는데 말이다.” 둘의 우정은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번졌다. 지역 주민들과 조금씩 교감하면서 내는 그윽한 꽃향기. 요즘처럼 양떼가 뛰놀고 장미가 피는 계절엔 그 산촌에 살았을 작가의 집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짐작해보곤 한다.

사연을 담은 한 채의 집. 부동산 돈벌이로 굴리는 여러 채의 집이 아니다. 선량한 사람들의 소중한 한 채의 집. 정성 어린 손길에 피어난 꽃들, 친구의 방문으로 지펴진 온기로 훈훈한 집. 버스가 떠나듯 우리도 결국 집에서 떠난다. 집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머물며 사는 동안 집을 사랑하고 집의 보호를 또한 받을 뿐. 누군가 찾아온다고 하면 청소를 하고 빵을 사고 커피콩을 볶는다. 초행길이면 집 주소를 알려준다. 언젠가는 나와 우리를 만나려면 무덤으로 찾아와야 하며, 커피는커녕 국물도 없겠지.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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