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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다음으로 큰 육상 동물인 하마가 붉은 땀을 흘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마의 땀을 분석한 일본의 연구진은 붉고 분홍빛을 띠는 두 가지 산성 화합물의 구조를 규명하고 그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하시모토 박사는 하마의 땀 성분이 자외선을 차단할 뿐 아니라 체온 조절 및 항균 작용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결과였다. 사람들은 하마의 땀에서 자외선을 차단하는 새로운 선크림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땀샘은 기원 또는 해부학적 위치에 따라 둘로 구분된다. 포유동물 대부분은 아포크린샘이라는 땀샘을 갖는다. 여기서 분비되는 체액은 체온 조절보다는 냄새를 풍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거나 스컹크처럼 적을 쫓는 용도로 사용된다. 개와 고양이는 발바닥에서 인간의 땀과 비슷한 소량의 체액을 내보낸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혀를 내밀고 헐떡거림으로써 체온을 조절한다. 짐작하다시피 하마의 땀샘은 아포크린샘이다. 이와 구분되는 또 하나의 땀샘은 에크린샘이다. 대형 유인원과 인간은 에크린샘을 통해 땀을 흘린다.

계통적으로 땀샘의 기원을 명확히 분류하긴 어렵지만 인간은 하마의 땀이 갖는 체온 조절 기능과 자외선 차단 기능을 생리학적으로 분리했다. 피부에 약 200만~500만개의 땀샘을 갖춘 우리는 ‘무색의 혈액’인 땀을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물이 기화되면서 잠열(潛熱)을 앗기는 동안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다.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은 몇 종류의 멜라닌 화합물을 합성한다. 지구보다 33만배 무겁고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9%를 차지하는 압도적 크기의 태양에서 방출되는 빛은 약 8분 후 지구 표면에 도착한다. 다양한 파장을 가진 태양빛 중 생명체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자외선이다. 과학자들은 자외선을 파장에 따라 세 종류로 분류하는데 그중에서도 피부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단파장 자외선(UVC)은 지표면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기 중의 오존이 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털 없는 인간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UVC와 달리 지표면에 도달하는 대부분의 자외선은 장파장 자외선(UVA)이다. 이들은 피부에 탄력을 부여하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이라는 단백질 구조물을 약화시킨다.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가죽처럼 변하는 이른바 ‘광노화’ 현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햇빛에 노출된 늙은 농부의 거친 피부를 떠올려보라. 사람의 피부 중에서 광노화가 가장 더디게 진행되는 부위가 엉덩이라는 사실이 단박에 이해가 된다.

단파장은 오존에 흡수되고 장파장은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므로 중파장 자외선(UVB)이 인간에게 가장 해롭다. 고에너지를 가진 UVB를 과하게 쬐면 피부 세포 안의 유전자가 손상을 입거나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피부가 붉게 변하면서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해수욕장에서 장시간 햇볕을 쬐고 난 후 피부가 검게 타고 벗겨졌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해로운 자외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피부 아래 모세혈관을 떠도는 콜레스테롤이 UVB를 쬐어야만 비로소 비타민D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인간 피부를 구성하는 세포는 주로 두 가지로, 표피세포와 색소세포이다. 이들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틈새가 없다는 점이다. 세포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빈틈없이 자리한 까닭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들이 피부 안을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 쉽게 망각되지만 가장 일차적인 인간의 면역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피부이다. 멜라닌을 만들기 때문에 멜라닌세포라고도 불리는 색소세포는 표피세포 약 30개당 1개꼴로 분포한다. 피부색이 희든 검든 이들 세포의 비율은 다르지 않다. 피부색은 멜라닌세포가 만드는 색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이들 색소 분자의 구조적 차이가 피부를 검거나 갈색 혹은 붉은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햇빛을 쬐면 멜라닌은 고분자 화합물로 검게 변하면서 자외선의 강한 에너지를 열로 변화시켜 소진한다. 이러한 멜라닌이라는 방패막 덕택에 표피세포 안의 유전정보 또는 골격 단백질의 손상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멜라닌의 에너지 소산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고 적도의 자외선으로부터 인류의 조상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 고위도 지방에 정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비타민을 합성하는 데 필수적인 UVB의 양이 고위도 지역에서 현저히 줄어든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북유럽 사람들은 지표면에 도달하는 소량의 자외선을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검은색 피부를 기꺼이 포기했다. 이렇게 인류의 피부색은 자외선과 멜라닌 사이의 오랜 줄다리기 역사를 드러낸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비타민D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피부색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뿐이다.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북부에 사는 이누이트족들이 바로 그런 예다. 이들은 비타민D가 풍부한 동물의 생간과 바다표범의 껍질을 먹는다고 한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누이트인들은 멜라닌 합성 기제를 여태껏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멜라닌은 비타민D의 합성을 촉진할 뿐 아니라 피부 세포의 유전자를 온전히 지킨다. 두툼한 털을 잃고 햇빛에 한껏 피부를 노출한 인류는 멜라닌세포를 피부 전면에 배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외선에 맞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땀샘이 촘촘히 박힌 인간의 피부는 효율이 썩 좋은 생물학적 냉각장치다. 에어컨에 비할 바 아니다. 하마에게 붉은 땀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땀샘과 멜라닌이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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