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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박원순을 기억하는 법

경향 신문 2020. 7. 29. 11:17

#1. 여름 저녁이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며칠 쏟아진 장맛비에 대기는 식어 있었다. 일요일인 26일 오후 6시.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외대앞 역 공간. 오가는 차와 오토바이가 내는 소음을 들으며 열 명이 흩어져 앉아 책을 읽었다. 각자 손에 든 책은 <김지은입니다>였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가 올 2월 펴낸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이다. 열 명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공동체인 ‘도꼬마리’가 기획한 행동독서회 알림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행동독서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는 대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 ‘도꼬마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짤막한 모임 공지에는 이런 구절이 담겨 있었다. ‘당신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기에, #피해자와_연대합니다’

30분간의 조용한 책읽기가 끝난 뒤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구절을 소개하고 왜 그 대목이 자신에게 와 닿았는지를 말했다. 거리의 소음 속에서 마스크를 쓴 채 하는 말들은 흩어져갔지만,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집중하려 애썼다.

#2. 1994년 4월18일 서울민사지법 562호 법정. 국내 최초의 성희롱 재판에 대한 1심 승소 판결이 내려지던 순간, 나는 현장에 취재기자로 있었다. 20분을 넘어 계속된 재판장의 판결 이유 설명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재판대 앞에 홀로 서 있던 피해자의 어깨가 울음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판이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피해자는 “상대가 한국 최고 학부의 교수인 만큼 (조교에서) 해임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교수를 매장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때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이길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재판을 승소로 이끌기까지 박원순 전 시장을 포함한 3인의 변호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를 몇 개월에 걸쳐 지켜보았다. 그 싸움을 박원순 변호사 혼자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대법원까지 가서 파기환송을 받는 6년 동안 중도에 무릎 꿇지 않고 재판을 견뎌낸 피해자가 있었고, 그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구체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후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각자 물음표를 안게 됐다. 그중 일부가 보이는 모습은 인간이 왜 그릇된 정보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인지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이 밝혀지면 신화에는 틈이 생기게 된다. 신화의 균열은 그 이야기를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혼돈을 가져온다. 그런 딜레마에 빠졌을 때 인간은 덜 충분한(incomplete) 설명보다는 부정확한(incorrect) 이야기를 선택해 이야기의 틈을 메우려 한다. 어떠한 사실이 주어져도 자신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신화를 깨지 않으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의 곁에 서는 것이다. 열 사람의 시민이 ‘#피해자와_연대합니다’라는 뜻을 밝히기 위해 책을 읽은 그 소박한 자리는 지난 역사의 지층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박원순을 기억하겠다면서, 피해자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직장 내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 고발 피해자들과 연대자들을 역사의 저 아래 층으로 다시 끌고 가 내동댕이치는 일이다. 박원순을 기억하겠다는 것이 그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이루어낸 역사를 부정하고 되돌리는 방향으로 갈 때 그것을 퇴행이라는 단어 이외에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은령 언론학 박사>

댓글
  • 프로필사진 ㅇㄹ 성범죄가 특성상 피해자의 증언에 무게를 실는 게 당연하나 범죄사실의 증명은 분명 책임이 있으며 , 증명할 수 없더라도 피해자의 일괸된 행동들은 그것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런측면에서 고소인 행동의 일관성을 부정할 만한 인수인계서와 생신 때 굳이 시장님 손에 자기손 포게어 케잌을 자르려하는 등 그녀의 시장님에 대한 부정적이고 위축된 감정 표현이라고는 보기힘든 행동들이 명확하게 보여지고 있네요
    상당한 혼란스러움이 있는 와중에 언론이나 책임있는 미디어에서 관련 영상을 보여주지 않늠 것도 이상한 일이고 ..
    그리고 지나고 보면 박시장님은 대권을 앞둔 3선시장이셨고 야당 정치인에게 성관련 이슈는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인생을 내려놓는 일이란걸 뻔히 알았을 텐데
    과연 이 일에서 약자는 누구입니까?
    고소인은 아직 자기 얼굴도 드러내지 않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상태로 있으면서도 아무런 정황적 증거도 제시 못히고 오로지 그녀 변호사의 주장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혼란은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박정희는 강간범이었으나 새말운동 등 빈곤퇴치에 리더쉽은 인정하는 것처럼
    박시장도 공과가 있을 것이니 그 인생의 전체를 부정 할 순 없으며 특히 이 고소껀에 대해 고소인은 그 주장의 설득력을 분명 확보해야할 겁니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충분할 것이라 판단되네요.
    2020.10.1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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