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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메트로폴리스인 서울의 수장, 서울시장은 한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큰 권력을 가진 자리로 꼽힌다. 10년간 그 자리에 있던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 피소 직후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 것은 근래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고인이 생전 여성인권과 성평등의 강력한 옹호자였기에 배신감과 당혹감은 배가됐다. 많은 매체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견해들이 쏟아졌다. 커다란 사건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이번 사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입장을 택한 이들도 있다. 평소 활발히 사회적 발언을 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침묵하는 경우가 있었다.

일각에선 침묵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왜 나서서 박 전 시장을 비난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서지현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었다. “공무원이자 검사인 저에게 평소 여성인권에 관심도 없던 이들이 뻔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누구 편인지 입을 열라 강요하는 것에 응할 의사도 의무도 없다.” 임은정 검사는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 ‘검사로서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난’과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난’, 어떤 말도, 심지어 침묵조차 맞춤형 비난이 준비된 덫입니다.”

민주사회 구성원에게 사회적 발언은 권리이지 의무는 아니다. 선택적 관심사에 대한 선택적 발언을 탓할 수는 없다. 성평등 문제에 민감하지만 북핵 문제엔 관심 없는 사람이 있고, 동물권을 옹호하지만 노동 문제는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사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발언이 의도와 다르게 유독성을 띨 가능성이 있을 때, 침묵도 현명한 선택지다.

반면 이번 같은 사안에 침묵할 권리가 없으며, 오히려 말할 의무만 있는 이들도 있다. 검찰 및 언론 개혁,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잇단 강경 발언으로 뉴스메이커가 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박 전 시장 의혹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나 지시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조직법은 ‘인권옹호에 관한 사무’를 법무부 장관의 역할로 규정한다. 게다가 법무부 외청인 검찰은 지금 박 전 시장 의혹의 한 당사자다. 박 전 시장이 죽기 전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았는지, 알았다면 누가 그에게 피소 사실을 알렸는지는 박 전 시장 의혹의 핵심 중 하나다. 피해자 측은 경찰 고소 전, 서울중앙지검에 박 전 시장을 고소할 뜻을 알렸다. 피소 사실 유출 진원지를 찾는 것은 성추행의 법적 단죄, 국가기관의 사적 활용 방지에 중요한 작업이다.

사회적 발언이 의무는 아니나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
이런 사안에 침묵할 권리 없고
말할 의무만 있는 이들도 있어
그것이 공직의 영예이자 무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18일 버닝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고 장자연씨 사건 등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모두 성범죄 의혹이 있던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공소시효가 끝난 일도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권층의 성범죄에 대해 이토록 엄격했던 문 대통령은 박 전 시장 의혹에 대해 여태 아무 말이 없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한국일보와 통화하면서 “피해자 입장에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가, 그날 오후 곧바로 기자들과 만나 “진상규명 작업이 끝나야 공식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물러났다. 정의당은 이런 대통령의 태도를 “외면과 회피”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침묵하는 사이, 공공기관장, 현직 검사, 여당 의원 등은 피해자와 그 조력자들을 의심하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집권층에서 가장 경청할 만한 말은 35년 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로서 박 전 시장의 변호를 받았던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나왔다. 권 의원은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해 “절망했다”고 단도직입해 표현했다. 권 의원은 이어 말했다. “미투 이후 변화 요구가 많았고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은 바로 자신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 것을 방관했습니다. 자신의 인식, 가치관,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바꾸고 이를 조직문화 속에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고, 심지어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그 현실이 참혹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말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말해야 한다. 그것이 공(公)과 직(職)의 영예이자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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