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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마을에서 18년째 아기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 마을의 초등학교는 7년 전 두 명의 졸업생을 내보낸 것을 마지막으로 폐교됐다. 어린이가 없는 마을은 텅 빈 우물 같았다.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바느질해서 인형을 만들고 폐교의 책걸상을 닦은 뒤 인형을 교실에 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흔 개가 넘는, 어린이 몸집만 한 인형들과 함께 운동회를 열었다. 70대와 80대의 주민들은 인형들의 손을 잡고 계주를 벌이기도 했다. 일본 남부 시코쿠섬의 산골마을 나고로에서 작년에 열린 인형들의 운동회 이야기다. 이 인형을 만든 일흔 살의 쓰키미 아야노는 마을에서 어린이를 못 보는 것이 안타까워 인형 아이라도 만들었다고 한다. 기이할 정도로 슬픈 장면이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방과 후 교실이며 운동장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올 시간인데 당연히 한 명의 어린이도 만날 수 없었다. 플라스틱 칸막이를 치고 띄엄띄엄 놓은 책상에는 이곳의 주인들이 스쳐간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인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어떤 어린이에게는 집과 가족이 무섭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집에 있음이 어린이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을 겨눈 온라인 성착취 범죄에 우리 사법제도가 얼마나 무력하게 대처하는 중인가는 더 말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약속을 잘 지키면 나아질 거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가족과 사회에 대한 기대를 쉽게 접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만난 이웃집 어린이에게 건강을 묻자 “우리 집 비누가 정말 큰데, 제가 요새 비누를 맨날 씻어줘서 비누가 완전 작아졌어요. 여름방학 동안 마스크 잘 쓰면 가을에 축구교실 하겠지요?”라고 되묻는다. 눈이 너무 많이 웃어서 마스크를 썼지만 웃음이 다 새어나왔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29일 통계청이 인구동향을 발표했다. 출생은 계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년도 같은 달과 비교하는데 올해 5월의 출생아는 작년 5월보다 2359명, 9.3%가 줄었다. 5월의 혼인 건수는 21.3% 감소해 1981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20·30대 인구 자체가 급격히 줄었다. 그들의 일자리는 도시에 나가야 있는데 도시에는 누가 살까? 돈들이 살고 있다. 몇 번이고 환생하면서 백 년을 일해서 받은 돈을 모두 저금해도 입주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격의 집들이 대도시에 가득 살고 있다. 돈이 집주인이어서 돈을 낳아야만 집에 들어갈 수가 있는지 사람은 도무지 거기 들어갈 수가 없다. 그 집들은 “우리들의 가격은 내일 더 오를 것이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고 다투어 외치는 중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고발하고 겨우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생각한다. 원래 이런 대사는 백발의 인물이나 할 법한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과 생존이라는 낱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절규가 끊이지 않는다. 절벽 같은 재난을 겪는 연령이 끝없이 낮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이가 왜 없을까를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린이를 차곡차곡 없애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소설 <유원>은 생존자의 죄책감을 다룬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유원은 12년 전 고층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친언니와 모르는 아저씨의 희생으로 우연히 목숨을 건졌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희망’ ‘기적’ ‘빛’과 같은 단어를 볼 때마다 “세계 전체에 희박한 것들을 굳이 내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올이 풀린 스웨터를 쓰다듬어 보았자 끊고 제대로 맺는 과정이 없다면 파국이 기다릴 뿐이다. 인형들의 운동회를 준비하는 것이 이 사회의 목표가 아니라면 자신에게도 없는 ‘희박한 것’이나 엉뚱한 죄책감을 다음 세대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따라야 한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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