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7월11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두고 86세대를 비판했다. 20대 여성이 진 전 교수의 글이 “사이다(명문)”라며 내게 읽기를 권했다.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거의 기사화된다. 그래서 나처럼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그의 글을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대개 동의하지만, 그 글은 나를 분노케 했다. 권력층에 가까운 서울지역 대학 출신 일부 86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은 틀렸다.

그의 페이스북 내용은 이러하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다 우리가 좋아서 한 것으로 누가 강요하거나 누가 희생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훈장으로 내세우지 마라” “넘치도록 보상받았다” “당신들 강남에 아파트 가졌고, 인맥 활용해 자식 의전원 보냈고, 운동해서 자식들 미국에 유학 보냈고, 청와대·지자체·의회에 권력 가졌다” “검찰도 가졌고, 곧 사법부도 가질 것이고 그 막강한 권력으로 부하 직원들 성추행까지 하고 있다” “이미 가질 건 가졌는데, 뭘 더 바라는가”.

그러나 그가 말하는 “넘치도록 보상받은 이들”, 즉 당시 “전대협 100만 학도” 중 지금 이렇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50대 국민 대다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후가 불안한 평범한 중년일 뿐이다.

그의 비판 대상 중 ‘실제 운동권’이 아니었던 이들도 많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학벌권력만으로 86운동권으로 ‘위장’해 배지를 달거나, 586 나이만으로 각계에서 민주화세력으로 행세하는 남·녀가 많다.

1980년대 당시 일부 운동권 문화에서 ‘학번’은 금지어였다. 대학을 가지 못한 ‘민중’을 배제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몇몇 대학의 운동권 학생들은 레닌의 글을 영어나 일어로 외우지 못하거나 학력고사 점수가 ‘낮은’ 대학생에 대해 우월감을 감추지 않았다.

노동자, 농민, 동료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다만 이 지면에 한 장면은 남기고 싶다. 가해자가 옷을 추스르며 피해 여성에게 “(민중에게 당한 것을)영광으로 알라”고 말한 사건도 있었다. 나는 최근 여성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글을 읽었는데, “내 청춘은 역사도 경력도 되지 못했다”는 구절을 전하고 싶다. 당시 “조국과 민중을 위해”를 외쳤던 여학생들은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바로 민중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입학 때는 반공 교육의 허상을 깨달은 ‘대학생’으로서 혼란스러웠다가 졸업 즈음에는 ‘여성’과 ‘운동가’의 모순 사이에서 고통 받았다. 진 전 교수가 말하는 86세대에 여성은 없다.

그 시절, ‘운동권 스타’ 한 명을 위해 많은 이들이 ‘보위’ 투쟁으로 감옥에 갔다. 수배 중 의문사, 군대 가서 의문사, 녹화(綠化) 사업(강제 징집), 방황과 자살, 행방불명자, 고문 피해, 시위 중 상해가 이후 인생에서 넘치는 보상으로 연결된 경우?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진 전 교수가 비판한 사람들은 “군부독재 타도”나 “양키 고홈”을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방대나 전문대에서 사학비리와 싸운 이들은 민주화운동가로 대접받지도, 지원받지도 못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사학 문제를 생각하면, 그들이 어떠한 고초를 겪었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추구하는 과정인데 ‘민주화세대’라는 정체성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이를 일반화하여 비판하는 진 전 교수와 같은 시각은 더욱 위험하다. 민주화세대라는 통칭은 민주화세대에 의한 민주화세대의 차별, 즉 성차별, 지역차별, 계급차별을 은폐한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의 표현대로, “서울대 출신 아재가 친구에게 보내는 글”을 전 국민에게 발송하지 마라. 진 전 교수가 비판하는 이들은 서울대(서울 지역) 출신 남성 극소수의 얘기다. 민주화세력 비판론·반성론은 의미 없는 세대 갈등과 서울대 출신 남성 중심주의를 조장할 뿐이다. 진 전 교수의 발언은 자유겠지만, 언론은 그의 페이스북 중계에 신중했으면 한다.

<정희진 여성학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