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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

기억력

경향 신문 2020. 8. 27. 11:03

건망증이 심해 걱정이던 아무개가 택시를 탔다. “마장동 갑시다.” “넵. 손님, 벨트 매시고요.” 한참을 달렸는데, “저 죄송한데 기사님. 제가 어디로 가자했나요? 왜 택시를 탔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나서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한 술 더 떴다지. “그런데 손님은 언제 타셨어요?” 나도 요즘 기억력이 여간 떨어진 게 아니어서 사고를 치고 있다. 최근에는 차 키를 잃어버렸다. 서비스센터에 물었더니 비싸서 보조키로 그냥 버티는 중. 휴대폰은 만날 어디다 뒀나 찾고 난린데, 둘이라도 살면 전화벨을 울려볼 수 있거늘 이거 정말 난감이로세. 누군 간만에 꺼내든 책갈피에서 비상금이 발견돼 맥주를 사먹었다는 횡재수 얘기. 나에겐 역시나 없고, 죄다 잃어먹고 낭패뿐. 머리를 찧고 분해 운다.

여름에는 나물이 쉬어 상하니까 나물 반찬을 잘 안 해먹는다. 귀한 때문인가 나물 반찬이 더 먹고 싶어져. 저번엔 나물 생각에 산채비빔밥을 잘하는 단골집엘 친구랑 갔는데, 비빔밥이 아니라 두루치기를 시켜 소맥까지 말아 건배를 하고, 아주 잘 먹고 나왔지. 똥을 안 닦은 듯 찝찝해 생각해보니 나물을 더 달래서 비벼먹을 걸 아쉬움. “야 너는 왜 말을 안 했냐?” “옆 테이블 쳐다보고 마음이 변한 줄 알았지.”

야구를 좋아해 경기시간표까지 살피며 구경하는데, 야구장이 어떻게 생겼나 잊어먹게 생겼네. 야구는 야구장에 직접 가야 즐겁지만 테레비 중계도 재밌다. 야구공 하나하나 다 카메라가 잡아준다. 야구선수 프로필에 타율과 방어율도 알려주고. 야구를 좋아하면 치매 걸릴 일이 없다더니 나는 건망증이 심해져만 가네. 그래도 팬심을 달궈 눈에 띄는 선수는 기억하려 노력 중이다. 지난 광복절, 도대체 그날이 어떤 날인지 잊은 원로급 목사 장로들이 성조기에 일장기까지 휘두르며 무슨 궐기대회. 나라사랑은 그만 됐고, 야구사랑을 한번 권해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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