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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1일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낙태죄 폐지와 교육 및 사회서비스 강화로 여성이 평등·건강·안전·행복하게 임신·임신 중단·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법·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여성 시민·의료·법률단체들은 환영했고 천주교는 태아 생명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 포기라며 우려했다.

오랫동안 규제가 당연하고 익숙한 방식이었기에 천주교도 정부도 규제가 생명 보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좋은 성적과 미래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결과 자녀가 공부에는 완전히 담을 쌓고 엇나가거나 가출해 부모와 단절한다면 아무리 ‘사랑의 매’였다고 합리화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낙태죄’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낙태죄’의 실효성 없음, 생명 보호의 실효적 수단이 되지 못한 점, 형법 제재와 위하의 문제점 등을 결정문에 상세히 밝혔다. 실질적으로 수단의 적합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떤 규제방식을 채택하면 헌재가 열거한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계속 규제를 고집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규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처벌기준은 임신 주수일 수밖에 없는데 여성단체 조사 결과 91.4%의 여성들이 임신주수 산정방식의 정확성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월경주기와 신체 사이즈는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르다. 그런데 누가 감히 22주와 22주 1일을 장담해 처벌과 불벌의 경계를 가를 수 있는가? 특히 형법의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처벌 근거로 삼는 것은 퇴행이자 사문화됐던 형벌권을 부활시키는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처벌 대상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8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 성폭력 피해 임신 중지 지원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청소년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임신 사실 인지 자체가 상대적으로 늦었다. 심지어 다른 질환 때문에 병원에 갔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결국 규제가 유지될 때 처벌 대상은 청소년,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진행된 실태조사, 상담 현장에서 확인됐으며 의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실질적 생명 보호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방지할 수 있을 때, 임신한 여성이 어떠한 조건에 있더라도 태어날 자녀와 자신의 삶이 안전할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여성운동이 형법 ‘낙태죄’ 폐지와 더불어 개인의 성(性)과 재생산권·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헛된 규제의 허상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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