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이는 지금도 아침마다 컴퓨터를 켠다. 이젠 익숙하다 못해, 마지못해 먹어야 하는 약을 삼키듯 무미건조하게 화상회의 플랫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누른다. 학부모들 요구로 2학기 개학 후 1교시는 선생님과 쌍방향 수업을 하지만, 교실에서보다 집중력과 학습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영어수업 때였다.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과목에 포함된다. 올해 초3인 아이는 지난해부터 영어학원을 다녔지만, 우리 동네의 경우 교과서로 영어를 처음 접한 아이들도 꽤 많다. 그러나 수업은 아이들의 학습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었다.

가령 교과서에 그려진 고양이를 보고 ‘이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영어로 물으면 아이들은 ‘이것은 고양이입니다’를 완성된 영어 문장으로 답해야 했다. 1학기 때 영상을 보고 알파벳과 영단어를 공책에 받아쓰는 과정은 있었지만, 주어와 동사를 갖춘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선생님이 한 아이를 지목했다. 학습속도가 더뎌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 소리는 전체 음소거 돼 누가 대신 답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아이는 잠깐 머뭇거리다, 비디오를 끄고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답을 하는 대신 자신의 존재를 감춰버린 것이다.

수업진도를 곧잘 따라가던 아이들도 공부에 흥미를 잃기는 마찬가지다. 30~40분 쌍방향 수업이 끝나면 나머지는 EBS 온라인 클래스에 올라온 영상을 봐야 하는데, 아이는 수업 영상을 보기 전 꼭 몇 분 길이인지를 확인한다. 3~4분짜리에는 환호하고, 15분 넘어가는 영상에는 한숨부터 쉰다. 수학시간이었다. 영상 속 선생님이 ‘481 곱하기 2는 몇일까요’라고 묻더니 몇 초 뒤 ‘962죠’라고 답을 알려줬다. 아이는 화면을 보고 있다 교과서에 답을 받아적기 바빴다. 풀이과정을 배우기보다 답을 채우는 법부터 익힌 것이다. 한 지인은 “아이들이 영상 자료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주의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치원도 원격수업을 하는 세상이다. 간혹 영상을 통해서라도 아이들과 교감하며 쌍방향 수업을 하는 유치원도 있지만, 대개는 간단한 학습 꾸러미를 제공하거나 동화구연 등의 동영상 링크만 공유한다. 그런데도 수십만원에 달하는 유치원비를 모두 내야 한다. 휴원에 따른 원격수업도 엄연한 수업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하나 마나 한 원격수업에 비해 유치원비가 과도하다고 하소연한다. 부실한 원격수업과 환불 요구, 지난 1학기 대학 등록금 반환 운동과 겹쳐지는 장면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원격수업은 거스를 수 없는 교육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력격차와 학습공백을 마주하고 있다. 일부 유치원과 대학, 학원 등은 원격수업을 교육보다 교육비 징수를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코로나19로 등교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지 7개월이 흘렀다. 교육부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을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라고 계속 이야기만 할 것인가.

<이성희 정책사회부 차장>

댓글
댓글쓰기 폼